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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희 Aug 14. 2021

폼페이의 어느 하루

 사방이 짙은 회색빛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피어오르듯,  도시는 화산재의 색깔로 물들어 있다. 하늘에서 먼지가 내려오고, 먼지로 가득한  공기는 안개보다 더  확실하게 소리를 죽인 도시.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늘에서 비석이 비처럼 쏟아지는 최후의 날. 희생자의 얼굴에는 그날의 공포가  그대로 달라붙어있다. 전시실 유리 안에  웅크리고 앉아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사람.  남몰래 울고 있는 것 같아 멀찍이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공포가 나를 엄습한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들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도로는 마차가 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단차가 높은 인도가,  현대의 도로처럼 배치되었다.  검은색의 커다란 화강암을 잘라 맞춘 돌, 오랜  세월  마차의 왕래로 깊숙이 파인 바퀴 자국. 로마 시대, 그들이 밟았던 길을 걷는다. 목이 마를 때쯤이면 신기하게 거리 분수가 나온다.  A.D. 100년도 안 된 시대, 가로 아본단차 거리와  세로 스타비아나  거리를 중심으로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설계된 도로. 물을 담아놓은 저수조를 도시 외곽의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하고 자연 낙차로 내려온 물이 각  건물 위 급수탑에서 저절로 압력을 조절한 후 각 가정에 공급했다.  폼페이는 놀라운 도시였다.

 로마를 대표하는 문화,  공중목욕탕을 둘러본다.  목욕탕은 본연의 목적 외에 수영, 운동과 오락 시설을 할 수 있는 다용도 휴식공간이었다.  넓은 공간에 화려한  치장이 요즘의 워터 파크가 아니었을까. 목욕탕의 선정적인 벽화에서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노변 술집, 식당, 여관 등 접객업소가 즐비하다.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다.  유곽이다.  넓은 복도가 있고 양쪽으로 여러 칸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복도 사방에 그려진 19금의 민망한 벽화 색채가 아직도 선명하다.  좁은 방에는 붙박이  침대만 하나 놓여있고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 폼페이의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라는 그 시대의 낙서가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

 '비극 시인의 집' 앞이다.  79년 8월,  폼페이 최후의 날. 로마에 가 있던 시인은 화를 피했지만 고향의 집을  그리워하며 비극의 노래를 불렀다.  시인의 집에는  사나운 개가 있어서 집 입구 바닥에  개의 그림과 함께  조심하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곳이 나의 그리운 집이라고  네로 황제 곁에서 비극 시인은 하프를 켜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비극 시인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파란 대문 집이 화산재를 걷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는 지금,  그 집을 바라보고 있다. 비극 시인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그 집을. 내가 비극 시인이 된 듯 눈과 심장이 아우성친다.  긴 시간을 끌어당기고 그를 소환하여 내 앞에 세우고 그 집을 보여주고 싶다. 그의 애타는 소원을 들어주어야  발을 뗄 수 있을 것처럼.

 비슷한 상황이 머리를 스친다.  거제 연초댐에 출장을 갔다. 건기라 댐의 물이  많이 빠져 있었다. 수질을 조사하려고 배를 타고 댐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자리  부분에 시멘트 벽과 나무가 드러나 있다. '이게 뭐예요?'  '수몰민의 옛집이에요.' '네?',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 집을 바라보았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옛집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저 옆에는 장독대가 있어 엄마가 드나들며 간장을 뜨고,  친구들과  고뭇줄을 매고 놀았던 나무를 다시 만난다면. 별안간 내가 수몰민이 된 듯  가슴이 뜨거워져 숨을 죽인다.  어릴 때 살았던 골목을 헤매는 꿈을 자주 꾸어서 옛집이 주는 의미를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근원을 향한 첫걸음이 태어난 곳, 본향인가?

  폼페이를 다셔와서도 파란 대문 집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메리 비어드가 쓴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을 읽었다.  내가 알고 있던  사연은 잘못된 정보였다. 폼페이를 발굴할 당시  이 집의 회랑 벽에 청중 앞에서  작품을 낭송하는  비극 시인이 그려져 있어 편의상 비극 시인의 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벽화도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을 듣는 장면으로 밝혀졌고, 네로 황제 제위 시기가 화산 폭발 이전이나 모두 틀린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많은 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나 보다. 이 집을 모델로 《폼페이 최후의 날》을 썼고, 나에게도 여전히 '비극 시인의 집'이다.

 베수비오산에 올랐다.  산의 초입 비탈면에 과일나무와 여러 잡목이 보인다. 산을 오를수록 나무는 사라지고 검은 현무암과 흙만 덮여있다.  지금도 화산이 폭발했던 웅덩이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베수비오산  정상에 서서 10Km 아래 떨어진 폼페이를 바라본다.

 화산이 폭발하여 저 멀리 폼페이를 뒤덮었고  도시는 일시에 사라졌다.  수 천년 후 다시 나타난 도시에는 건물과 도로 등 그들이 살았던  시가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숨 쉬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날의 폼페이,  저절로 땀이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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