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희 Aug 14. 2021

원운동에 갇힌 사람

 어떤 물체가 한 점을 중심으로 일정한 속력으로 회전하는 것을 원운동이라 한다. 원운동은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과 원의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원심력에 의해 일어난다.

 태양계가 탄생한 이래 수억 년 동안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달은 지구의 중력을 동력으로 원운동을 하고 있다.

  하루를 시작한다. 만나는 대상에 따라 알맞은 거리와 속도를 예상하며 원운동을 한다. 필요한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을 맞추고 에티켓에 따라 영점을 조정하고  다시 거리와 속도를 조절한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피로가 몰려든다.  승진을 위해  일을 더 해야 할까 아니면 동기들과 술 한 잔 하며 스트레스를  풀까. 구심력과 원심력이 팽팽히 맞서지만, 내일을 위해 남은 구심력을 거둬들이고 원심력을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돌아갈 것이다.


 사랑에서도 원운동이 작용한다.  사랑은 밀물처럼 밀려들어  이성을 마비시키고 모든 것을 잠식한다.  중심을 향한 구심력의 강력한 작용이다.  이 작용에 페로몬이 일정 부분 촉매 역할을 하겠지만.

 그러나  사랑은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크거나 같을 때까지 유지된다. 조건이 변하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다. 변심이 아니라 사랑의 원심력이 작용한 탓이다. 사랑은 원심과 구심운동에 따라 착실히 움직일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밀물과 썰물의 진폭이 크고 짧은 호흡에서는 영화 '비포 선 라이즈'와 '세렌디피티'와 같은 열정적인 사랑이, 긴 호흡으로 진행되면 파고의 공간에 정이 들어서서 진국의 사랑이 자리 잡는다.

 한 사람에게 끌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영화 '비포 선 라이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력한 감정의 여운이 그들의 삶을 점령한다. 그 아쉬움으로 영화 '비포 미드나잇'과 '비포 선셋'까지 거치면서  사랑의 여정을 담는다.  영화'애프터 선셋'이 제작되면 참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받는다는  전제와 기대 아래 주는 가장 이해타산적인 관계인 것처럼 사랑은 원운동에 지배를 받는다.


 사람은 자신의 습관대로 행동하고 성향에 따라 결정하면서 살아간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차곡차곡 저축하기보다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얻기 바란다. 그는 십 년 전쯤 새로운 벤처기업에 주식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요즘 다시 주식 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만류하지만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으며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 확신하고 같은 패턴의 투자를 한다. 결국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가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존중하고 배려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끌려서 매번 힘든 이별을 하곤 한다.  그녀의 성향에 따라 선택을 하고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 남의 탓이 아니라 스스로 쳇바퀴를 만들어 원운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운명을 만든다.


 피터 한트케는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 정원의 부드러운 흙길에서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매일 몇 시간 동안 거니는 바람에  발자국이 생겼다. 문득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건물 앞에서 모자를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왔다 갔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길은 그 사람의 발자국으로  깊은 도랑이 되었고,  남자의 모습은 도랑에 가려 보이지 않은 채  모자의 움직임만 보여주는 장면이다'라고 했다. 그 남자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했던 것일까, 습관적으로 고도를 기다렸던 것일까.

  사람들은 자기보다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자신의 관성대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우리의 원운동도 깊은 도랑과 모자만 남길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