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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비 사막을 달리며

-미국 서부 여행

by 조현수

어느 여름 뉴욕에 사는 딸 집에 갔었다. 딸이 뉴욕에 산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혼자 밥 해 먹으며 회사 다니느라 고단한 삶에 맛난 밥이라도 한 끼 해 주고 집 정리와 말벗이라도 해 주고 오자는 게 목적이었지만 사실은 딸과 함께 떠나는 며칠간의 여행에 무척 들떠 있었다. 우리 모녀는 서부로 여행 계획을 잡았다.

미국 동부와 캐나다 쪽으로는 가족여행을 다녀왔지만 서부여행은 처음이라 계획을 짜기 위해 전화를 할 때면 우리는 “헬로우 산타모니카”, “헬로우 샌프란시스코”하면서 장난치고 웃곤 했었다. 산타모니카 해변은 이름이 너무 예쁘고 샌프란시스코는 스콧 매캔지의 샌프란시스코 노래와 금문교가 보고 싶어 무작정 가보고 싶었다.

일행과 샌프란시스코를 가기 위해 모하비 사막을 꽤 오랫동안 달렸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가도 가도 황량한 길옆으로 아몬드 밭과 오렌지 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광활한 모하비 사막의 모래만이 뜨거움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냉방된 차 안은 시원해서 책을 뒤적이거나 휴대폰을 만지며 추억 속에 잠길 수가 있었다.

오래전 여름, 방송국과 신문사가 함께하는 사막 여행에 지인들과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중학생인 딸도 동행하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사막이 좋았다.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열기 속에서 삶을 느끼고 싶었다. 아스라이 모랫길을 따라가면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를 만나고 싶었다. 어린 왕자를 읽고 바오밥 나무가 보고 싶어 사하라 사막에 가고 싶었지만 아프리카는 너무 멀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실크로드 TV광고를 보고 지인들과 함께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해 보고 밤이면 찬란히 솟아지는 별을 보고 싶었다.

한낮의 사막 여행은 무리여서 우리 일행은 오후 세시쯤 온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은 상태로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올랐다. 눈썹 위에 모래가 가득 쌓인 사막 낙타가 불쌍해 타고 싶지 않았지만 사막을 달리려면 방법이 없었다. 한낮이 지난 시간인데도 훅하고 뜨거운 열기가 옷 속을 뚫고 들어왔다.

너무 뜨거워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낙타에 떨어지지 않으려 집중하다 보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뜨거움과 타는 듯한 열기로 인하여 나의 삶을 돌아보기는 불가능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 사막 썰매를 타고 속도를 내며 내려오는 일도 내겐 너무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사막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메모를 할 때는 뭔가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맛보았다.

우리는 막고굴을 보기 위해 돈황의 숙소에 머물렀는데 밤이 되자 온몸이 깔깔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 선명해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낮에는 뜨거움에 몸부림치지만 밤에는 시원하고 청량해서 매력이 넘치던 사막이라는 이름.

숙소의 옥상에 올라 지인들과 여행담을 이야기하며 마시던 한 잔의 맥주의 맛과 눈앞에 펼쳐진 사막의 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의 황홀하고 잊을 수 없던 기억들이 모하비 사막으로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모하비 사막을 직접 걸으면서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었지만, 실크로드를 걸어본 기억과 생각들이 버스 안에서 내 맘을 설레게 만들었다. 동행한 가이드는 문학과 영화에 조예가 깊어 나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가이드가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이 영화 바그다드 카페 촬영지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 그 영화를 보기 전엔 난 왠지 바그다드 카페는 이라크에 있을 것 같았다. 황량한 바람만 불어오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 현실적이지 못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내고 슬픔에 빠진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귀부인 스타일의 독일 여자 야스민이 찾아온다. 모든 걸 잃은 듯한 그녀의 삶에 야스민은 무지갯빛 사랑을 불어넣어 준다. 재주가 많고 내면이 아름다운 야스민과 그녀를 인정하는 브렌다의 우정이 마법 같은 기적으로 피어나고 바그다드 카페는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을 맞이한다. 영화의 주제가 Calling You는 황량하고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 딱 어울렸는데 그 영화 속의 모하비 사막을 내가 달리고 있었다니...

꿈과 희망이 꿈틀대던 영화, 나에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했던 영화, 듣고 또 들어도 환상적인 멜로디인 Calling You...

기회가 된다면 뜨거운 여름날, 다시 한번 황량하고 거친 모하비 사막을 달리며 인생을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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