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 차인 사람(0)
Prologue. 꽃에 대해
퇴근길에 어떤 남자가 꽃을 한아름 싸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날은 1층에서 팝업스토어로 꽃집을 연 날이었다. 그 남자의 마음은 아마 점심때부터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팝업스토어는 오직 그 날 점심시간에, 갑작스럽게 연 것이었으니까. 그 남자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다 우연히 꽃집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 남자는 어느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꽃을 구경했을 것이고, 크래프트지로 줄기를 돌돌 말 때 쯤에는 아마 그 남자의 마음에도 꽃내음이 가득 퍼져나갔을 것이다.
꽃을 선물하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꺾인 꽃은 필연적으로 시든다.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꽃은 아이러니하게도 꽃병 속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너를 생각했노라는 사실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꽃을 선물하곤 한다.
꽃은 특정한 어느 순간과 어느 공간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그 순간과 그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그 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비록 꽃이 언젠가 죽어버리더라도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순간들은 둘 사이에서 머무르게 되고, 기억되게 된다. 그런 이유일까? 시들 꽃을 선물하는 것은.
나는 누군가에게 단 한번도 꽃을 선물해본 적도, 꽃을 받아본 적도 없다. 사람들은 내게 언젠가 너도 그 기쁨을 알게될 것이라고 말해주곤 했고, 나도 언젠가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상상했지만, 10여 년 전에 그 말을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나는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그 기쁨을 알 수도 없다.
꽃을 선물할 누군가를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내가 꽃을 주고 싶은 사람은 항상 뒤돌아섰고, 내게 꽃을 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부담스러웠다. 그런 어긋남은 겹겹이 쌓여 띠를 이루었고, 어느샌가 그것이 수십 번을 넘어 백 몇 여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글을 통해 세상에는 꽃을 주는 사람, 꽃을 받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만 이러한 어긋남이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해서 어떻게든 다시 바로맞추어 보고자 노력했다. 주변 친구들과 골똘히 이야기하고, 가설들과 설명들, 그리고 변명들을 늘어놓기도 하고 치료라도 해보고자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그저 해명할 수 없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어긋남의 경험은 백 겹도 넘겠지만, 그 중의 백가지 이야기만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