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곤투모로우> 후기
최근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누군가 우리에게 왕후를 둘러싸고 있으라고 말했고, 우리는 적막 속에서 우리의 코 앞에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우리 중 누군가가 죽을까 혹은 나라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 내가 죽을까 전쟁이 벌어질까 따위의 생각들로 시끄러운 적막을 채운다. 그리고 정말 어떤 이들이 몰려와 왕후를 죽이기 위해 왕후를 둘러싸고 있던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칼로 베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람만도 못한 취급으로 도축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 그 상황이 진심으로 두려워했으나, 왕후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이들은 울부짖고 죽음으로 조용해지고 다시금 울부짖고 누군가는 칼에 베이지 않기 위해 더 안으로 파고들었으나 그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고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고 왕후는 견고하기 위해 노력했다. 왕후는 본인의 죽음이 나라의 멸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꿈에 대한 생각으로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의 차례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생각은 기어이 칼이 나의 살을 가르고 나서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은 쉽게 죽지 않고 아직 왕후는 죽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견뎠으며 일말의 안도감과 고통으로 눈을 감았다.
최근 감상한 뮤지컬 <곤투모로우>를 생각하면 나는 종종 고종에 대해서 떠올리곤 한다. 뮤지컬의 넘버도 연출도 훌륭했으나 나는 늘 내가 캐릭터들의 중점으로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고 할 수 있다. 픽션 내부에서 내가 바라본 고종은 성질이 기민하고 기질은 더욱 예민한 사람이라 왕의 위치에 서있기에는 다소 위태로워 보였다. 이완의 말을 빌려 그토록 총애하던 신하를 곁에 두고 정치를 하던 그의 의존적인 모습이 다소 그러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왕의 위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질을 타고난 왕들이 있다. 그러나 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왕의 위치라는 것이 고종에게 있어서 그에게 왕이 될 자질이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헤이그 특사 때에 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나라의 백성들도 죽이는 것이 스스럼없던 이완으로 인해 고종은 백성들의 죽음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들이 그리 많다 해도 눈앞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것을 견딜 수가 있을까. 나라를 다른 나라에 파는 한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행위를 옹호하거나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의 나라를 다른 나라에 팔아도 되는가? 그는 그보다 더 자신이 눈앞에 있는 백성들, 결국 고작 타인의 죽음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뮤지컬의 가장 초반 김옥균을 향해 사람은 죽이지 말라는 그의 말이 고작 백성을 향한 걱정이 묻어난 아버지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나 절망에 찬 절규하는 비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기꺼이 본인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은 결국 파리목숨만도 못한 죽음을 맞은 것인가? 고종은 이들의 죽음을 그런 비루한 죽음으로 만들어버렸으나 이들은 죽기를 이미 각오한 자들이고 죽기를 결심한 이들과 독립된 자신의 나라를 보고자 했던 자들 모두 죽어갔다. 이들의 죽음은 왕조차 외면한 죽음이나 결국 이들이 나라를 위 흘린 피는 그 무엇보 숭고하다.
손은 흔히 우리에게 있어 주체성을 나타낸다. 손이 보이지 않는 옷은 손을 사용할 일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며 수동적인 인간상을 드러내는 은유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되곤 한다. 고종은 이완이 나올 때마다 혹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사용할 때마다 손을 뒤로 감추거나 길게 늘어진 소매를 사용하고 자신의 발 앞에서 거치장거리는 옷을 차기도 한다. 그리고 정훈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때에 고종은 자신의 손을 사용한다. 그러나 김옥균을 죽이라는 지시에서 총을 건네준 것은 고종의 손이 아니었다. 고종은 정말 김옥균을 죽이고 싶었는가? 고종이 버린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김옥균을 죽여 김옥균의 사지를 잘라 그것을 바람으로 이용한 것. 정훈과 같은 혁명을 향한 마음과 그 불씨를 더 키우고 그러나 기어이 무산으로 만들어버리고... 총애를 하던 자신의 신하의 죽음을 정치로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김옥균 또한 그것을 알았고, 김옥균과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한몫 챙기고 싶다는 비루한 욕심을 부끄러워하며 김옥균과 뜻을 함께 하기를 결심한 종훈과 같은 불씨를 키워낸 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그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이의 죽음은 초연했다.
내가 바라보는 김옥균은 바람이다. 혁명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김옥균을 죽인다 하더라도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키는 또 다른 김옥균과 정훈,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생겨날 뿐이다. 결국 고종은 헤이그 특사의 배후가 누군지 모두 말했고, 한정훈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 또한 말했으나 자신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한정훈을 김옥균이라 말한다. 우리는 혁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은 언제나 정의를 위한 자들의 혁명을 향해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