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연출들과 자극적인 이야기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서론에 적는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필자는 스릴러 영화와 범죄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밝힌다.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단순히 자극적인 범죄 사실들과 화제성에 끌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면에서 작동한다면 나쁜 것일까? 나는 분명 이 면에 현혹되어 그동안 여러 가지 범죄들을 그저 오락거리처럼 즐겼으니 앞선 질문을 할 자격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득 더픽션을 감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위험한 생각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삼 일간의 비를 관람한 뒤에 나는 브런치에 내 후기에 대한 글을 업로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자면 그 브런치 게시물을 발행한 지 얼마 크게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생각들이나 일상 속에서 문득 생각나는 자세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 내가 핍에게 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핍에게는 어느 순간에 워커에게는 당연히 양보해야 할 것들에 대한 집중을 하는 나머지 핍이 굳이 그래야 할 정당한 이유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고 테오의 격정 어린 언변들은 모두 가스라이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일은 모두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흔히 드라마 괴물이나 다른 범죄 드라마들에서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이 불쾌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것이 현재 범죄물이라는 장르에서 피해자들을 다루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온몸이 토막 나서 죽고 그것이 그 캐릭터의 서사가 된다. 서사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캐릭터의 전부가 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그리 누군가를 존중하는 연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 이런 일들을 겪은 피해자들이 이런 온라인 매체들을 불쾌해할까? 문득 나는 너무 내 시선에서 피해자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내가 변함없이 지금까지도 불쾌한 것은, 자극적인 범죄 방식과 구체적인 범죄에 대한 묘사가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에서 괴물과 같은 인격을 위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이라면 하지 못할 일들은 결국 인간이 저지른다. 그것이 아무리 가해자의 악행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도 썩 유쾌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사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확신마저도 가지고 있으나 맞는 견해라고는 볼 수 없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묘사를 통한 범죄자의 악행을 드러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실제 피해자가 범죄를 고발하거나 범죄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든 순간들이 그렇다.
더 픽션에 대한 후기를 적으려고 했으나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우리는 피해자의 신분으로 있는 와이트를 비난할 수는 없으나 범죄자들을 그렇게 만들고 사회의 분위기를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본인과 같은 상황에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생각했다. 피해자의 신분에서 가해자의 신분이 된 것이다. 나는 와이트가 안타까우면서도 와이트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옹호하고 싶지 않았고 옹호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에 대한 무게감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블랙은 사이코패스 범죄 살인마가 아니라는 말은 결국 피해자의 당사자성 위로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매체에서나 이런 생명 윤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들을 결국 저지르기 시작하고 신문을 통해 자극적인 묘사를 통한 글을 적은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블랙의 범죄를 더러운 그저 사이코패스 범죄물로 만든 것과 다름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시키고 본인과 다른 생각의 사람들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이 사람이 겪은 일과는 무관하게 우리 모두 단호하게 아닌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것들은 와이트의 잘못된 가치관과 사상이 아닌 사회에서 범죄를 다루는 태도에 있으니 근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결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양심에 기인한 행위를 해야할 것이다.
그레이 헌트는 본인이 적은 그 글이 세상에 나오길 바라지 않았던 이유는 윤리적인 고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가라면 글을 적으면서 아무리 취지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하다 한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방식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뇌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가 블랙에 대한 이야기를 완결 지었다는 것은 확신이 없는 글이었다는 것이고, 그런 글이 당연히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러니 독자들도 그레이 헌트를 비난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레이 헌트는 이 작품을 기사에 발행하는 것을 반대하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고 말한다. 그레이가 진정한 작가가 맞는가? 솔직히 그레이가 정말 시대를 타고나지 못한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라면 아무리 그릇된 범죄에 대한 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잡았어야 했다. 내가 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은 제작사 측에서 범죄에 대한 묘사들이 그저 자극적인 화제성에 지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래된 뮤지컬인 만큼 오래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항상 공연을 볼 때마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무대가 돌아가는 무대 장치, 오래된 무대 연출들과 그 위에 새로 만들어진 새로운 조명 연출들.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돌입할 것이라면 조명만 새로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앞서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처럼 내가 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은 이 자극적이지 않은 뮤지컬이 다소 자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둡고 무겁다. 그러나 이 뮤지컬에서는 이 면에 대해 더 생각하고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윤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들이 더 많은 작품에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