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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Oct 04. 2019

우리 같이 도시락 먹을까?

힘들었던 기억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그럼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준비해오자




나에게는 10년 지기 친구 J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13년째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굳이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친구.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도 편하게 연락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친구. 특별한 듯 소소한 우리의 우정은 그 시작도 매우 소소했다.




J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우리에게 유일한 행복은 바로 친구였다. 때로는 울고 웃으며, 즐겁거나 힘든 일 모두를 함께하는 사이. 그때를 우리는 아직도 추억한다. 그 시절, 우리는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 자율 학습을 했는데,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맛있는 저녁밥이었다. 우리 엄마도, J의 어머니도 딸들을 위해서라면 맛있는 도시락을 싸는 데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제안을 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오는 건 우리 둘 뿐이니, 우리가 돌아가면서 도시락을 준비해오는 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엄마들을 격일로라도 쉬게 해드리고 싶은 딸들의 기특한 마음도 숨어있었다는 것을 엄마들이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도시락 회동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무슨 메뉴일까를 기대하며 부푼 마음을 안고 마주 앉아 우리는 도시락 뚜껑을 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을 열고 메뉴들을 감상한다. 우리 엄마의 도시락은 내가, J의 어머니의 도시락은 J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엄마의 음식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진 채로. J의 어머니의 도시락 중 특히 메추리알 꼬지가 내 기억에 남는다. 대학생 때 자취를 하던 시절, 어느 날엔가 갑자기 그 음식이 생각 나 메추리알을 사다가 혼자 해 먹었던 적도 있었다. 각자의 꿈을 향해 공부하던 두 딸들을 위해 엄마들은 그렇게 매일 도시락을 싸주셨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저녁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에 대해 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미래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꿈 많고 열정 가득했던 19살의 두 소녀는 그렇게 매일 꿈을 키워 갔다. 정성이 가득한 엄마들의 도시락과 함께, 그리고 그 시간을 추억할 유일하고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매일매일의 도시락 반찬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행복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때로는 막막하고 힘들어서 지치는 순간도 많았지만, 엄마들의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먹으며 함께 영차 영차 힘을 내어 보았던 그 순간들을 추억한다. 아직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때를 이야기한다.


힘들었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이 된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값진 순간들을 우리는 엄마들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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