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밥상
오빠, 나 할머니 팬 할래!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시외가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이다. 마침 대구에서 웨딩촬영이 있어 촬영 전 날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너무나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할머니가 두 팔 벌려 안아주신다.
"오랜만이야."
오늘 분명히 처음 뵙는 데 왜 오랜만이라고 하실까? 할머니는 그만큼 예비 손자며느리가 반가우셨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를 뵐 때면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맛있는 갈비가 한 상 가득 구워지고 된장찌개에 밥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배 터지게 먹었다. 그다음 날이 웨딩 촬영인 것도 잊게 하는 꿀맛 중의 꿀맛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디저트로 식사에 버금가는 양의 갖가지 과일들이 등장했다. 사과부터 포도, 딸기, 오렌지까지...
동네 산책으로 터질듯한 배를 겨우 진정시키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서는 사랑 가득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릴 적 잠에서 덜 깼을 때 들려왔던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그 소리.
전 날 저녁에 먹은 것들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우리는 한 상 가득 할머니의 아침상을 받았다. 사랑 가득 꾹꾹 눌러 담으신 밥 한 공기와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거한 밥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부터 갈비찜,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 멸치볶음, 강된장, 깍두기, 파김치, 제육볶음, 조기 구이, 그리고 백종원도 울고 갈 폭발 직전의 계란찜까지.
강사 생활을 시작하고 아침을 먹은 지가 언제였던가. 일어나자마자 먹는 아침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밥을 한 숟가락씩 뜰 때마다 할머니가 올려주시는 반찬들과 함께 한 입 한입 크게 벌려 최선을 다해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지만 할머니는 왜 이렇게 적게 먹냐며 한 공기를 더 권하셨다...
우리 할머니 댁도, 남자 친구의 할머니 댁도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할머니는 행여나 배가 고플세라 양손 가득 간식을 쥐어 주신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나는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또 생기게 돼서 너무나 감사한데...
웨딩 촬영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남자 친구의 다정했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모습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는 남자 친구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나에게도 나를 누구보다 끔찍이 아껴주시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엄마도 막내, 나도 막내인지라 나는 다른 사촌 언니, 오빠들보다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 짧았다. 나는 외가댁에 가면 늘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와 같이 잠을 잤다. 잠자리에 누워 아빠는 요즘 많이 바쁜지, 내가 공부는 잘하고 있는 지를 물어보셨다. 그리고 어미 고생하지 않게 엄마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시며, 내가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장롱 한 구석에 숨겨두었던 만 원짜리 몇 장을 조용히 내 손에 쥐어 주시던 할머니, 우리 차가 사라질 때까지 골목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왜 그때는 그 시간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했을까.
할머니의 정성을 듬뿍 먹고 가서였을까. 처음 하는 웨딩촬영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남편도 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긴 촬영에도 지칠 줄 몰랐다.
밥상 위에는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할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