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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Oct 01. 2019

이게 스위스 음식이라고?

내 부엌의 단골 손님

오빠, 오늘은 내가 스위스 식 감자전 해줄게.




작년 이맘때 가을, 남편(당시 남자 친구)과 나는 막걸리에 푹 빠져 있었다.


수업 준비로 늘 바빴던 우리 커플에게 여유로운 주말은 없었다. 만나서 데이트의 절반 정도를 책을 보는 데 보내다가 일요일의 저녁 늦게 쯤 맞이하는 짧은 여유. 그 여유 시간에 마시는 막걸리가 우리에게 꿀맛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건강에 좋다는 부추와 애호박을 아낌없이 썰어 반죽에 넣는다. 운이 좋을 때에는 탱글탱글한 오징어와 바다 향을 머금은 홍합까지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친다. 이 먹음직스러운 부추 부침개가 우리가 애정 하던 막걸리 안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 오늘은 내가 스위스 식 감자전 해줄게.”

"스위스식 감자전?"  

남자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시 우리는 연애 초반이었고, 요리 잘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부지런히 인터넷으로 요리 레시피들을 검색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스위스식 감자전, 이름하여 '뢰스티'였다.


열정에 가득 찬 채 썰기를 시작했다. 감자를 최대한 얇게 썰어 물에 담가 전분기를 없앤 뒤 키친타월로 야무지게 물기를 닦아 반죽에 넣어준다. 그렇게 준비된 반죽을 한 국자 가득 담아 기름을 품고 지글지글 달아 오른 프라이팬 위에 펼쳐놓는다.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하게 익을 때쯤 과감하게 프라이팬을 휘둘러 전을 뒤집어준다.


그. 런. 데.

내가 한 뢰스티가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과 다르다. 바삭바삭한 감자전에 베이컨을 썰어 올리고 그 위에 예쁘게 써니 사이드업으로 구워진  계란 프라이.


그 뢰스티라는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늘 보아 와서 익숙한  한국 감자전이 떡하니 등장했다.


"정말 이게 스위스 음식이라고?"


한국 감자전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볼 것 같았던 내 예상과 달리, 스위스 감자전은 색다르다며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던 남자 친구. 그리고는 벌컥벌컥. 톡 쏘는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이 맛에 요리를 하는 걸까. 잘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그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지쳤던 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내 음식을, 내 정성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게 스위스 식이든, 한국 식이든 상관없이 행복하다.


더운 날 뜨거운 불 앞에 서 있어도, 추운 날 차가운 물에 야채를 씻어도, 맛있게 먹어 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렇게 내 음식을 잘 먹어주던 남자 친구가,

지금은 남편이 되어 매일 내 사랑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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