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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Aug 03. 2020

영어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생각해보니 꽤 오래전부터 나는 레이첼(Rachel)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해왔다. 중간에 다른 것으로 바꿀 이유도, 그리고 딱히 바꾸고 싶은 이름도 없었다. 


"왜 레이첼을 영어 이름으로 쓰게 되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영어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훨씬 더 많이 받게 된다. 그것이 본인의 영어 이름이든, 혹은 자녀의 영어 이름이든.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결국은 할 게 없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본인이 영어를 어떤 사람처럼 잘하고 싶은지, 혹은 롤모델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써보면 어떨까.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절반은 그 사람이 되어 있는 느낌이고, 그 모습을 닮기 위해 나도 모르게 노력하는 모습이 만들어진다.


내 기억에서 가장 처음으로 레이첼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했던 건 중학생 때였다. 영어에 관심이 많고 흥미가 있었던 나는 당연히 영어를 잘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게도 그런 나를 특별히 아껴주셨던 영어 선생님 덕분에 나는 시에서 주관하는 영어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때 내가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을 하기 위해 정했던 영어 이름이 바로 레이첼이었다.


내가 레이첼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처음엔 그저 예뻐서였다. 레이첼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레이첼이라는 역할을 맡았던 제니퍼 애니스톤이 예뻤던 것이다. 나는 나이 차이가 7살이 나는 언니 덕분에 또래에 비해 신문물(?)을 조금 빨리 접하는 편이었다.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즐겨보던 프렌즈라는 미국 시트콤을 나도 같이 즐겨보곤 했었는데, 얼굴도 예쁘고 영어를 너무나 야무지게 구사하는 레이첼이라는 주인공에게 나도 모르게 끌렸다. 그리고 나도 영어를 한다면 저렇게 예쁘고 똑 부러지게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레이첼이라는 영어 이름을 쓰게 되었다.


그 후로는 줄곧 영어 이름으로 레이첼을 사용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 후에 좋아하게 된 여배우의 이름도 레이첼 맥아담스였다.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노트북,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인데 극 중에서도 매우 사랑스럽고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이 아니었나 싶다.


영어 학원에 근무를 할 때에는 늘 영어 이름을 썼다. 학생들에게, 학부모님들에게 한국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영어 이름을 썼다. 오히려 그게 편할 때도 있었다. 일을 할 때에는 나라는 개인을 잠시 모셔두고 레이첼이라는 강사로서 사람들 앞에 나섰다.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레이첼이라는 영어 이름을 쓰며 살다 보니 책이나 티브이, 영화에서 레이첼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를 할 때만큼은 나는 레이첼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말한다.


이름은 다른 사람들이 불러주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를 때 제일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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