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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Jul 10.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7년 만에 마주한 나의 실패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2012년 겨울의 그 날을.

 

죄송합니다. ㅇㅇㅇ님은 합격자 명단에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번의 실패도 없던 내 인생의 1막이 끝났다. 나는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다 이내 짐을 챙겼다. 나에겐 아직 되돌아갈 학교가 있었고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부모님도 계셨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더 성장한 것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때 가슴 한 구석에 맺힌 눈물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끝나버린 1막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꽤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으니까.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칭찬과 인정으로 가득했다. 성적이 좋아 늘 1등을 했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줄곧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 글을 쓰면 교내외 행사에서 자주 수상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하고, 글 잘 쓰고, 얼굴도 예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을 비롯한 어른들께 늘 칭찬을 받았고, 친구들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나의 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으며, 나는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그렇게 핑크빛 학창 시절을 보내고,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인생에 실패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약학 대학 입학시험이었다.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내게는 더없이 좋았던 것이다. 또 한 번,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더는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하루 4-5시간의 잠을 자고,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영어 단어를 보고, 식사 시간이 아까워 책을 보면서 혼자 밥을 먹었다. 시험 합격은 당연히 나의 것이었다.


그러던 내게 불합격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최선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고, 20대 초반에 누릴 수 있는 많은 즐거움을 포기했던 나에게 불합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2년이라는 짧은 인생이었지만, 실패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았던 나에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었고, 친구들에게 불합격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할 새도 없이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복학을 했다.


그 후 학교 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고, 대학교 3학년은 사망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공 수업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 안에서 또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꾸역꾸역 해냈다. 비록 시험에서는 떨어졌지만, 그것이 실패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거나 어렵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묵묵히 남은 2년의 대학 생활을 마쳤다.


졸업 후 명문대 대학원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과감하게 전공을 버리고 영어 강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토익 보조 강사로 일했던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평소 영어와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던 내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그저 그런 영어 강사로 남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학창 시절에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잘해왔던 것처럼, 그때의 꽤 괜찮았던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성공한 영어 강사가 되면 다시 괜찮은 사람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사로서의 길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고 남몰래 울었던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고 또 버티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인정을 못 받게 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내 가치를 조금 더 높이고 싶은 욕심.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나를 괴롭혀왔지만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느낀 업무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과도한 업무로 인해 나는 자주 몸이 아팠다. 힘들다, 못하겠다는 이 두 마디가 왜 이리도 힘들었을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두 마디를 삼키고, 맡은 일을 꾸역꾸역 해냈다. 아니, 그 이상을 하려고 애썼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심장이 빨리 뛰고 몸살이 나는 날이 많았다. 충분히 잘 해왔으니 제발 좀 쉬어달라고, 내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계속해서 보내오는 신호를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한 퇴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0월이었다. 


달리던 기차에서 내려 한숨을 돌리고 보니 비로소 내 앞에 실패라는 큰 산이 우뚝 서 있었다. 정신없이 달릴 때는 휙휙 지나가버려서 보지 못했던 실패의 아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로 인한 부담감들이 커다란 산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왜 그토록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을까. 왜 간이역에라도 한 번 내려서 그 풍경들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다가올 여정에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수없이 많이 펼쳐져 있는데, 나는 그 지나간 풍경들을 짊어지고 가느라 버겁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랜 시간 칭찬과 인정에 익숙해져 있었다. 칭찬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신랑의 말이 내 마음 한 구석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 주었다. 


두 달여간의 시간 동안 지난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은 것도, 대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넣지 않은 것도 또 하나의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어 낸 사람은 없다. 내가 약학 대학 시험에서 실패를 했기에 영어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오늘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영어 전공자가 아닌 내가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업 준비를 했던 시간들, 내 수업이 마음에 안 들어 그만두려고 했던 학생을 내 수업이 아니면 안 듣겠다고 하는 학생으로 만든 시간들, 지금 하는 일을 하다가 안 되면 학원 강사나 해야겠다는 친구의 말에 기분이 상했던 시간들... 실패와 실패를 거듭했던 그 시간들을 통해서 배우며, 내가 목표하는 모습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의 나는 당당하게 내 이름을 건 영어 수업을 하고 있고, 학생들이 이루고 싶은 꿈에 영어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나는 7년 전의 실패를 계속 외면하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실패라는 것을 알고 만회할 기회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무엇인가를 잘해서 인정받고 칭찬받아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것이 진짜 실패가 아니었을까.


불합격을 실패로 받아들이기 까지, 그리고 실패해도 여전히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나에게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내 인생 1막은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잠깐의 인터미션 동안 나는 충분히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또 다독였다. 이제 좀 더 단단해진 모습을 안고 내 인생의 2막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실패했기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라 실패한 덕분에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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