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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l 01. 2024

오래된 일기장을 펼치다

[책 출간 도전기]

최근 프로그램을 끝내고 한 두 달 정도를 구직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프로그램을 끝내고 구직을 바로 하는 것이 작가 경력상 가장 좋은 흐름이다. 업계 흐름상 언제 상황이 안 좋아질지 모르고, 구인공고가 시즌 흐름상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자리를 일부로 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동안 힘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과 일은 없다. 타 프로그램에 비해 크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딱 방송프로그램 그 이상, 그 이하 딱 그 정도로만 힘들었다. 사람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일렁거렸다.


프로그램은 윗선의 칭찬과 함께 잘 끝났다. 브랜디드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브랜드 측에서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며 추후 연계성 프로그램을 더 만들고 싶다고 했고 연장 계약 이야기까지 나왔다. 보기 힘들다는 대표님들의 얼굴까지 뵀다. 정말 이상한 건 그래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고, 우울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너무 기뻐서 오히려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껴졌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나'에 대해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런 내가 너무 생소하다고 했다. 자타공인 나는 객관화를 잘 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나의 상태를 파악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했고,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도 내 상태에 대해 이게 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상태로 구직을 하면 기계처럼 일을 할 것 같기도 했고, 이유 모를 답답함에 미칠 것 같기도 했다. 불행하게 느껴지거나 우울한 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계절이 봄인 걸로 보아 계절을 탄 것 같다.


머리를 비우기로 결정했다. 가장 좋은 것은 몸이 고생하는 것. 기본 중 기본을 선택하기로 했다. 마냥 걸어보기로 했다. 걷기 가장 좋은 것이 뚜벅이, 난 차가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선택이었다. 난 지방 사람이라 서울 지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서울을 뚜벅이로 여행해 보자고 생각했다. 검색창에 '서울 뚜벅이 홀로 여행' 혹은 '서울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서울 혼자 갈만한 곳'을 검색하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조금씩 신나기 시작했다. 신나니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결국 부산까지 도장을 찍고 왔다.


서울에서 돌아다닐 때는 때론 걷기도 하고, 일부로 노트북 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을 쓰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복잡하거나 감정 조절을 하기 위해 글을 썼던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습관은 이제 글을 쓰니 즐거워지는 단계까지 왔다. 물론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쉬는 김에 하드웨어를 정리하기로 했다. 하드웨어를 정리하다 보니, 예전 네이버 계정을 탈퇴하기 전에 네이버 블로그 폐쇄 전 게시글을 pdf로 만들어뒀던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글이 있었다. 방 청소를 하다 어릴 적 썼던 일기장을 살펴보다 발견했던 내용을 기록해 뒀던 것이었다. 본가를 다시 방문하면 일기장을 다시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전 본가를 방문했다. 일기장을 확인해 보니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일기를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린이의 동심, 왜 어른이 지켜줘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인지 내가 어른이 된 내가 어린이였던 나의 일기장을 읽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지는 어린이의 일기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일기장을 보면서 가장 감사했던 사람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일기장만 가지고는 선생님의 성함을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너무 감사했고, 감동받았다. 철없고 순수했던 초등학생의 일기장에는 초등학생의 꿈과 사소한 투덜거림 등 일상들이 가득했고 그 일기장 한편에는 담임선생님의 확인 혹은 잘했어요 도장과 함께 진심 어린 답장이 하나하나 남겨져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선생님의 답장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확인해 주고 내 일기에 답장을 달아주셨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자랑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본 담임선생님은 정말 감사하고 대단한 존재였던 것 같다. 낭만의 시대, 그 시절의 담임선생님이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도 직장인이지 않는가. 선생님도 학급의 모든 아이들의 일기장 검사와 더불어 하나하나 답장을 달아주는 그 정성은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꿈을 지지해 주는 가장 멋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줬던 것임이 분명하다.


<선생님의 답장 중 일부>

00아, 글솜씨가 정말 좋다. 글쓰기 실력을 계속 쌓다 보면 멋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00이는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가장 큰 효도야

시간은 언제쯤 멈출까? -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청설모??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는데 청설모는 고기도 먹는대. 무섭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받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선생님도 00이를 믿어~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게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는 것도 좋은 효도랍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부처님을 믿어도,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게 종교의 가장 좋은 점이겠지?

저녁시간인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00이가 행복을 느꼈다고 하니 선생님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

오늘 00이가 티볼 시합 하는데 잘하고 있을지 궁금하네

공부하는 것, 노는 것 모두 재미있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처음으로 일기에 동시를 지었을 때 - 이런 멋진 동시가!! ㅎㅎ 00이와 선생님만 보긴 아까운 시인데? 학교 문집에 싣는 건 어떨까? 괜찮겠니?^^


일기장을 확인하고 나니, 요즘 사회가 너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교권의 추락과 학생인권 사이에서 계속되는 문제와 논쟁, 보이지 않는 힘의 싸움. 사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선생님의 의무, 학생의 의무 그 의무들이 당연히 서로 지켜지는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과 그 믿음 사이에서 나오는 선생님과 학생의 사제간의 '사랑'이지 않을까? 필자가 학교 다닐 당시에도 학부모의 힘이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학부모의 힘에 휘둘려 선생님이 누군가를 더 챙기고 사랑하고 아끼고 조심하고 눈치 보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떠한 사례로 인해 학생을 조심하고 조심할 수 있는 환경은 없었다. 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력교사가 있는 학교가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선생님이 그렇지 않았고, 왕따 등의 학교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았고 우리 반은 그런 게 없었으면 하는 게 컸었다. 필자가 학교 다닐 당시 졸업 몇 년 전쯤 김영란법이 생겼다. 학생들은 김영란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촌지'라니 너무 웃기지 않는가. 물론, 법이 그냥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어떠한 문제를 일으켰고, 앞으로도 일으킬 것을 방지하여 규칙을 만든다. 필자는 그저 그 시절이 그립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어떤 것도 따지고, 재지 않아도 됐던 그 시절. 선생님과 학생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문뜩 그리워졌고, 이런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정말 잘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제자를 양성해 준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내 생각보다 이룬 것도 있었고, 진행 중인 것도 있었고, 도전하면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꿈을 이룬다는 것, 꿈을 이뤘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출되었다. 이미 이룬 것들은 <기자가 되어 신문에 나의 글이 실리기 / 대학 학보사에서 경험 쌓기 / 해외여행 다녀오기 / 성인이 된 후, 가족여행 많이 다니기 / 자취하기 / 친한 친구와 만취할 때까지 술 먹어보기 / 대학 복수 전공하고 졸업하기 / 운전면허 따기 / 콘서트 다녀오기 / 취업 후 처음 본 돈으로 부모님 옷 사드리고 맛있는 거 사드리기 / 하고 싶은 거 고민하지 말고 한 번 질러보기 / 게임 배워서 2시간 이상 해보기 / 게임기 구매해서 게임해 보기 / 기회가 된다면 독서한 책의 저자와 소통해 보기 / 대학 생활을 하며 자체 휴강 해보기 / 여행 많이 다니기 / 봉사 100시간 이상 꾸준히 해보기> 벌써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룬 뒤였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죽기 전에, 책을 한 권 쓰기 / 글과 관련된 공모전 입상, 등단>을 빨리 해보고 싶었다. 이 중에서 빨리 선택할 수 있던 것은 책을 한 권 쓰는 것이었다. 얼마 전 <당신의 별> 매거진이 글이 30개 이상을 넘겼다며 POD 출간이 가능하다며 브런치스토리 알림이 떴다. 이거야말로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획 투고를 하기에는 투고가 운이 좋아서 한 번에 되지 않는 이상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에세이집을 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대학시절부터 시 공모전에는 나름 시를 계속 도전하고 있었고 대학 문학공모에도 후보까지는 올랐으니 가장 현실성이 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질의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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