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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l 04. 2024

(시집) 책을 출간하며 발견한 것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난 지금까지 처음이라 힘들고 서툰 그 시간을 글과 함께 보냈고, 특히 '시'를 사랑하고 아꼈다. 나의 모든 '시'와 '글'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무참히 버려졌던 글과 쉽게 쓰였지만 사랑받았던 글, 내겐 그 어떤 글보다 소중했지만 관심도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던 글도 있었다. 팔리는 글과 쓰고 싶은 글이 같을 수 없다고 했다. 만에 하나 작가가 쓰고 싶은 글이 팔리는 글이라면 그 작가는 천재이거나 복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줄곧 글을 써보면서 욕심을 내왔다. 언젠가 내 글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자꾸 쓰다 보면 팔리는 글이 오지 않을까 하고. 처음에는 그냥 글을 통해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었고, 그다음은 내 글이 서툴더라도 사랑받았으면 했고, 누군가에게 위로와 되었으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글을 '공감'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이 없었다. SNS가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주로 쓰이지는 않았었다. 


내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이유는 내 글이 어떤 글일까?를 보기 위함이 컸다. 내 글을 처음 올렸던 플랫폼은 블로그였지만, 내 글이 무단으로 다른 작가의 창작물이 된 걸 본 순간 바로 삭제를 누르고 한동안 창작 의욕을 잃었다. 에세이나 시를 창작하여 게시하기에는 네이버 블로그는 절대 좋지 않은 플랫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닌 이상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다음은 대학 동기들과 노트 한 권을 사서 <월간 윤종신>처럼 매주마다 각자 시를 한 편씩 쓰고 시 뒤편에 평을 써주기도 했다. 어느새 그 노트가 마지막에 누군가에게 가있는 줄은 잘 모르겠지만, 바쁘면서 뚝 끊기게 되었고 그다음 내가 선택한 것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당시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나 글을 감성적인 느낌을 유도해 시나 에세이 등을 잘 편집해 게시하는 스타일이 유행이었고 이를 통해 책을 출간한 사람들이 대거 늘어났던 시기였다. 


이 경우 복사 붙여 넣기가 안 되고 직접 타이핑하여 옮겨야 하기 때문에 저작권 도용에 있어서 네이버 블로그에 글만 게시하는 경우보다는 문제가 적었다. 좋았던 점은 SNS는 반응이 빠르기 때문에 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기 좋았다. 어떤 글이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인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 글을 보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내 의도대로 독자가 글을 받아들이는지, 내 글이 팔리는 글까지 갈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속상하기도 했고 좋았던 점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브런치에 도전한다. 2번의 탈락을 겪었고, 3번째 도전만에 합격을 거머쥐었다.


브런치가 내게 준 것은 좀 더 체계적인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에는 내가 쓰고 싶은 글만 고집하여 썼다. 하지만 플랫폼 특성상 화면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이 노출되고 호기심에 자꾸 누르고,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배우게 된다. 책의 가장 좋은 장점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과 배경을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다. 카메라와 영상물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것은 책이나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 글은 경험과 지식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상상력까지 같이 덤으로 준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때론 감정을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왜 나는 언제 저런 글을 써볼까 부러워해보기도 하고, 내가 나이가 더 든다면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등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하니 왜 작가가 되어 원고도 안 받고 글을 쓰냐고 했다. 나는 작가이기는 했지만 새내기 작가이고, 아직 내 글에 여전히 자신이 없다. 글에서 이 브런치에서만큼은 평등한 이 자유가 너무 좋다. '작가'가 모든 글을 다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자기 분야가 있다. 나는 아직 새내기 작가라서 그 분야에서도 내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다른 작가님들에게 다른 세상을 열심히 배워가는 중이라서 뭐 하나 더 얻어가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명 나의 글은 성장했을 것이다.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점도 한 몫했을 테지만, 좋은 글을, 다양한 글을 꾸준히 봤다는 점 역시 정말 중요한 점이다. 학습이 되어왔을 테니까. 출간을 준비하며 원고를 수정과 퇴고를 반복하며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때론 그리웠다. 처음 초고를 썼던 그때가. 브런치에 매거진 <당신의 별>에 있는 시는 모아놓았던 시를 수정해서 올리기도 했고, 새로 창작하여 올리기도 했다. 시집에는 브런치에 게시하지 않은 시도 추가하였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결정한 시집의 제목은 <그 여름밤, 나에게 너에게>다. (왜 매거진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제목이 변경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


초고를 썼던 때가 그리웠던 건, 수정과 퇴고는 글을 예쁘게 만들고 다듬을 뿐이라는 점이다. 시는 결국 감성이고 글맛이다. '감정'이 살아야 하는데 그 감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건 초고를 썼던 그 순간의 '나'였던 것이다. 영원한 건 없다. 그게 자신일지라도. 모든 건 잠시뿐이고, 전부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닌데 '내'가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분명 어린 '나'는 내가 너무 허접하고 왜 이렇게 허접한 글을 쓰고 언제쯤 글다운 글을 쓸까 스스로 자책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시간 지나 더 성장한 내가 보니 이런 글을 묵혀두고 있었다니 했던 원고도 있었다. 


어린 '나'는 늘 못 얻은 것, 잃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다행히도 늘 얻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것만큼은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퇴고를 마치며 들었던 생각은 출간에 대한 것보다는 나의 삶과 지금까지 변화해 온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의 눈에는 나의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는 이제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내가 창작자이고 경험자였기에 그 시간의 틈에 끼어있었던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서 썼던 시들은 비극이라서 탄생했지만, 어느새 멀리서 보니 그 끝은 다 희극이었다. 시간 지나 성장해서 쓴 시는 멀리서 볼 줄 아는 그 생각과 마음이 드러나는 게 보이기도 해서 대견하기도 했다. 


퇴고를 하며 가장 생각났던 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날 일으켰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에 많은 작품이 나왔던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 그 사람을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사람, 그 사람에게 위로를 받으며 버텨냈던 나. 그런 내가 쓴 시가 이제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 마음이 어루만져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시를 쓰고 있고, 대학 때 시를 잘 썼던 선배 중 한 명에게 최종 원고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버킷리스트로 나온 시집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양심이 있기 때문에 너무 퀄리티가 떨어지면 그 시는 빼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는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내게 그대로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선배에게 한 가지의 도움을 더 요청했다. 책 설명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기획하고 쓴 시집이 아니다 보니, 어렵기도 하고 내 글의 특징을 잘 모르겠으니 혹시 느낀 점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선배는 내게 " 네 시는 사람들이 읽기 편안하고 힐링되는 면이 있어. 표현이 좋더라. 동시처럼 순수한 분위기가 있어서 그쪽으로 좀 더 써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동시 쪽 공모전도 열릴 것 같은데 그쪽 응모해 보는 건 어떨까 싶어"라고 응원과 조언을 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칭찬에 흠뻑 젖어 기뻤지만, 여전히 글이 어렵고 갈길이 멀다. 그래도 시집을 한 권 더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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