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평창 올림픽. 스노보드 슬로프. 출발을 앞두고 긴장감을 느끼고 있을 선수와 느긋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는 코치의 모습이 동시에 비춰지고 있었다.
“누가 보고 웃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코치)
"코치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면서 경기에 대해 잊어버리게 됩니다." (선수)
‘우와! 이거 조금 멋진데!’
경기 후에 가진 그들의 인터뷰는 그랬다. 극도의 긴장감이 느껴질 상황에서 묵묵히 실을 엮는 모습이라니. 낯선 환경이나 극한 상황을 만나면 쉽게 긴장하는 성격인지라,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솟는다.
<손은 외부의 뇌>라는 일본의 뇌과학자 구보타 기소우의 주장에 의하면, 손으로 하는 단순한 반복은 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러니 이런저런 생각에 휩쓸려 다니는 나에게 뜨개질은 딱 알맞은 처방전 아닐는지. 그날의 장면과 인터뷰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마음속에 저장 버튼을 눌렀다. 언젠가 나도 뜨개질 한 번 해보리라!
그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수세미 뜨게 된 것. 아크릴 수세미는 미세 플라스틱이 빠져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날. 무턱대고 삼베 수세미를 주문했다. 항균, 항독, 방충성이 있으며, 대부분의 그릇을 세제 없이 설거지할 수 있다니!
하지만 세 가닥 삼베실의 불협화음은 가혹했다. 초보자의 손길에 꼬였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탄력성 없는 삼베실은 더욱 푸석거렸다. 처음 만드는 사람에게는 대바늘을 권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뭇잎 모양의 외곽은커녕, 한 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엄마.. 화이팅!" 아이들은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응원을 남겼다. 그러니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최후의 방법은 세 가닥에서 여섯 가닥으로 실을 겹쳐서 만드는 것. 우여곡절 끝에 그럴듯한 수세미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쁨도 잠시 뿐. 촘촘하게 뜬 삼베실이 물에 닿자 지나치게 단단해졌다. 손이 작은 나에게는 영 부담스러운 그립감이다. 게다가 이틀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물기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수세미에도 취향이 있다면 가볍고 성글어 잘 마르는 것이 좋다. 한 번의 실패를 거쳐서 나에게 맞는 도안을 찾아 헤맸다. 잘 마르려면 구멍이 많아야 하고, 모양은 최대한 심플하게. 그렇게 찾은 도안으로 다시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큐를 의심하며 '제발 엮어만 다오!' 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한 코씩 떠내려갔다. 마음의 평정심을 얻기 위해 시작한 바느질 이건만. 자존감은 손이 스친 삼베실만큼 너덜거렸다.
“형아! 엄마 완성했어!!"
그렇게 내 손으로 만든 수세미로 그릇을 닦으며, 일주일간의 힘들었던 감정들도 함께 씻어냈다.
설거지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던가!
못하는 일이지만 계속하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일.
내게 그런 일이 두 가지 있다면,
바로 삼베 수세미 뜨기와 글쓰기이다.
뜨개질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탈리아 중부 템페라시라는 도시에 강진이 덮쳤을 때, 30여 시간만에 구출된 98세의 할머니에게 기자들이 물었다고 한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코바늘 뜨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네!"
세 가닥으로 엮은 수세미가 드문드문 한가닥으로 얇아지고,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오면. 싱크대 수납장을 열어 삼베실을 꺼낸다.
이제 슬슬 수세미나 떠볼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