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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Sep 14. 2021

구멍 난 티셔츠를 입어도 멋진 사람

unsplash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 사장님에게는 아들, 딸이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위의 발랄하고 멋진 대학생들이었다. 가게를 이어받기로 했는지 일을 도와주러 오는 쪽은 주로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도 잘하고, 늘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반장이었다고, 사모님은 살포시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아주 드물게 그런 사람이 있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인, 최신 유행템을 두르지 않아도, 존재 자체에서 ‘힙’함이 느껴지는 사람 말이다. 일할 때도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저 사람은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할까 궁금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 집에 집들이를 가게 되었다.

차로는 30분 거리지만, 저 먼 우주만큼 다른 분위기의 신축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 2대를 8세대가 공유하는 임대 아파트 거주자로서,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라니. 좁은 어깨가 더 움츠러들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하고 아늑한 거실과 외국 잡지에서 나올 법한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의 방들. 모양도 맛도 낯선 음식들은 어떻게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그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드디어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어! 사람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가까이 붙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내 코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배웅을 나 온 사장님 아들이었다. 그 오래되고 허름한 티셔츠에서 아주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에나. '티셔츠의 구멍마저도 힙한 사람이라니.'









20년 전의 그 티셔츠 구멍이 생각났다.

무슨 색인지 어떤 무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구멍은 어떤 의미로 계속 남아 있었다. 그건 가난 같은 결핍에 대한 감정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기도 했다. 구멍은 구멍일 뿐인데. 구멍에 대한 해석이 나를 시끄럽게 했다. 남의 것을 바라보느라, 내가 가진 것들을 놓치면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의심만 하면서 지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항상 아무도 보지 않는 구멍들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닐까.




문제는 구멍이 아니었다.

티셔츠도 아니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다. 주변 상황, 살아온 환경에 핑계를 대면서 조금이라도 힘들면 벗어나려고만 했었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없어서, 조금 노력하다가도 눈을 돌렸다. 더 좋고 편한 것은 없나, 돌아가는 길 대신 지름길은 없나,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걱정만 하면서 말이다. 신이 나서 글을 쓰다가 막히고, 막히면서 힘들어지자 나는 또 그렇게 멈춰 섰다.




구멍이 있든, 무엇을 걸치든,

담담히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인데...



 








"엄마, 조회수가 늘었어요!"


어제까지 12였는데 13이 되었다고 했다. 누군가 한 명이 더 클릭한 모양이다. 초3 아들이 코딩 사이트에 입문한 지 한 달. 아직은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초보 수준이지만, 마음만은 2천 명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왜 자신은 팔로워가 없느냐며 어깨가 축 늘어져 하소연을 한다.




"아들.. 너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닌데.. "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팔로워 걱정하지 말고, 하나씩 배우면서 만들어야......”



말을 잇다가 가슴이 뜨끔했다.

아... 이건, 내가 나에게 해야 하는 말인데...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들에게 한 말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쓰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구멍 앞에서 당당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구멍 난 티셔츠를 입고 멋진 사람은 못 되어도,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 정도는 되자고. 언젠가 이 발행의 떨림이 덤덤함으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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