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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Nov 11. 2021

적립식 글쓰기


해마다 몰입했던 주제가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빠져들 때는 둘 중 하나였다. 절박하거나 재미있거나. 혹은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재미있어지기도 하고. 돌아보건대 고민을 품고 있을 때는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내 안에서 보내오는 반짝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따라가는 일이랄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일상의 조각들을 잘 모아두어야 한다. 고민이라는 숙제가 재미있는 퍼즐이 되기도 하니까.




목표를 먼저 세우면 오래가지 못했다.

간절한 마음이 부족해 달리다가 멈춰 서길 반복했다. 결혼하고 다이어리의 새해 목표가 매년 이런 식이었다. <돈 모으기. 영어공부. 운동하기. 커피 줄이기> 실패가 예견된 계획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실패의 도돌이표가 나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섣부른 다짐보다는 지금 정말 간절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봤어야 했다. 순간적인 불씨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만한 일. 여기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계속 궁금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매번 실패만 반복하던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엄마라는 등번호를 달게 된 그 시점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일은 조금 떨리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툰 손길의 엄마에게 아이들이 주는 무한한 사랑. 그 안에서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묘하게 얽힌 감정들을 마주해야 했다. 유년시절의 기억들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슬픔.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기운조차 없을 때. 잘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 하나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육아와 함께 마음을 돌아보기 위해 심리. 철학책을 읽다가 여러 해가 흐르고.


픽쳐북의 영어 두 줄을 읽기 위해 영어 공부하다가 1년이 흐르고.


아침에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를 보다가 미니멀하게 일상을 정리하다 또 한 해가 지나고.


가족들의 건강 문제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죽어도 안 읽히던 경제기사도 이제는 재미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새해계획 없음>이 되었다.






물론 조금의 아쉬움도 남는다. 몇 년이고 한 길만 깊이 내려 파야 할 텐데. 다음 일이 궁금해 징검다리 건너듯 넘어가 버린 건 아닐까. 그래도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조금 즐거워졌다고 말이다. 물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던 겁 많은 사람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바로 글쓰기를 통해서. 단 세 줄 쓰기도 힘들어하던 내가 많이 달라졌구나. 비록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글로 남겨두면 그 변화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 많던 고민들은 글쓰기에 좋은 재료였던 것이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 고민들을 모아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건 좋은 재료가 될까. 서툰 솜씨로 이것저것 요리해 보면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짧은 문장이 되고 주제로 묶어지는 일들의 설렘과 즐거움을. 잊지 말아야겠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바람을 계속 불어주자.






사실, 브런치에게 혼이 났습니다 :)

글은 꾸준히 써야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요.


자신을 위해 매일 조금씩 5년 동안 쓴 글들을 이어 소설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작가 아룬다티 로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네요. 그래도 언제든 마음이 일면 벌떡 일어나서 쓰겠습니다. 글도 적립하다 보면 행복이 되어 쌓여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가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목돈처럼 힘이 되기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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