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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Mar 11. 2022

배민 아니고, 배달의 아들


"엄마, 심부름할 거 없어요?"


우리 집에는 매월 받는 용돈이 없다. 명절 세뱃돈은 통장으로 입금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사준다. 아직은 어려서 친구들과 멀리까지 놀러 갈 일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간혹 찾아오는 용돈 찬스가 있는데. 아빠가 거스름돈이 생긴 날이나,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날이다. 받은 돈은 각자의 봉투에 모아 보관한다. 만약 사고 싶은 장난감이 생기면 그 돈에서 보태어 사주기도 하고, 많이 모이면 통장으로 입금해주기도 한다.



첫째가 초3이 되었을 때 경제와 관련된 책 한 권을 건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돈을 모으는 방법과 투자 방법, 그에 필요한 노력과 태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 나도 진작 알았더라면...' 펑펑 쓰며 살지는 않았지만, 경제 지식 부족으로 돈에 관해서는 언제나 소극적인 편이었다. 돈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수입, 지출, 저축, 투자, 기부까지 아이들이 용돈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개인적으로 부를 쌓는 일만이 아니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는 인내심을, 소비에서는 신중함을 기를 수 있다. 경제와 환경 때로는 역사까지 맞물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될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야 경제 기사 해독에 관심을 갖다니. 그리고 첫째는 엄마의 '요즘 관심사'를 포착하는 데 예리하다. 환경에 이어 경제까지. 돈을 모으고 쓰는 일에 대해 제법 진지해졌다.




워런 버핏은 자전거 신문 배달,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맥도널드 그릴 담당. <부자들의 첫 일자리>라는 파트를 읽더니, 아들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연소근로자 나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니 용돈을 모을 수 있는 일은 오직 심부름뿐. 근로기준법도 없는 엄마에게 적극적으로 고용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스스로 금액을 정하여 종이를 내민다. 엄마의  돈이라는 걸 알아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측정된 심부름값은 100원-500원. 현실감 떨어지는 임금 측정에 웃음이 나면서도, 짠함과 기특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건 왜일까...




“아들~ 배달 아르바이트 어때?”



이제는 제법 컸으니 가게 심부름도 괜찮을 듯 싶었다. 숫기가 많은 타입은 아니어서 처음에는 주저하는 모습이더니, 도전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처음으로 간 가게는 떡집. 태권도 끝나는 길에 동생과 함께 들러서 좋아하는 떡 한 팩씩 골라 사 오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작은 성공으로 성취감을 느꼈을까. 떡집 가는 일은 이제 식은 죽 먹기다. "할머니가 너희들은 과자 안 사 먹고, 왜 맨날 떡만 사러 오냐고 하시던데요?"




떡집을 시작으로 결제해 본 가게를 늘려간다. 편의점, 빵가게, 분식집, 마트, 문구점, 세탁소 등. 동네에 심부름 가 본 곳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자랑스러워한다. 새로운 가게를 갈 때는 자세히 설명해준다. 얼마 전 새로 생긴 그릭 요거트 가게에 갈 때에는 “ 덜 꾸덕한 거 주세요, 하면 돼! 250g짜리 7,500원!이야”아이는 눈동자가 커지면서 신중히 머릿속에 입력한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신이 나있다. “엄마~ 이거 신제품이라고 먹어보라고 주셨어요!” 아이는 초코맛 요거트와 함께, 가게 사장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역시 우리 동네 가게들은 인심이 좋다니까!!”



둘째는 더 어리숙하고 부끄럼이 많다. 그래도 형아 어깨너머로 배우라고 같이 가면 용돈을 똑같이 준다. 어느 날은 심부름을 시켰는데 둘째의 손에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형아가 태권도에서 발을 삐끗하여 대신 들고 왔다는 것이다. 아픈 다리를 절며 빵을 사러 갔을 첫째와 형아를 생각하는 둘째의 마음에 코끝이 찡해진 날도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다. 한창 클 나이여서 그럴까. 뒤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아이들. 때마침 집에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원래 먹고 싶은 사람이 사 오는 거야~" 배달 아르바이트를 제안하니 첫째가 자기가 하겠다며 선뜻 나섰다.



장을 보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일은 이렇다. 리스트 적기 / 대체품 생각해 두기/ 대략적인 가격 계산 / 장보는 순서 / 장바구니 필요 여부/를 생각한다. 오늘의 배달 품목은 참외, 요거트, 식빵. 세 가지밖에 안되는데 진지하게 다이어리를 펴서 메모를 한다. 사야 할 것을 하나씩 적어나가고, 어디를 먼저 갈지를 고민한다. 하필이면 공휴일이라 요거트 가게가 문을 닫았다. 요거트는 삭제. 간단히 식빵과 참외만 사 오기로 정했다. "엄마 장바구니 필요하겠는데요?" 행여나 부끄러울까 봐 피아노 가방으로 줄까 물었다. "참외 담으려면 장바구니가 나을 것 같아요." 우리 아들 제법인데?



"다녀오겠습니다!"



외투 주머니에 카드를 넣고 단단히 지퍼를 닫는다. 핸드폰을 목에 걸고 장바구니를 챙겨 집을 나선 아들.  아파트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상가이니, 신호만 잘 지키라고 일러준다.






"다녀왔습니다!"


아들이 방긋 웃는 얼굴로 들어와 장바구니와 검은 봉지를 내려놓는다. "참외가 포장이 안돼서 그냥 비닐에 받아왔어요. 식빵에 묻을까 봐요." 낱개로 굴러다니는 참외들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과일가게 사장님도 자연스레 비닐봉지에 담아주셨을 것이고. 다음에는 장바구니에 함께 담아와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아- 오늘도 배민 아니,

배달의 아들 덕분에 일손을 덜었다.





'아참! 좀 전에 핸드폰이 울렸던 것 같은데....'




"아들~ 이게 뭐야!"


"그거 보내려고 핸드폰 들고나간 거예요!"




문 앞에서 배달 완료 메시지 보내기.

너란 녀석의 섬세함이란.

아무래도 배달료를 인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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