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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Apr 22. 2022

우리 집에 코로나가 두 번 찾아왔다



시작은 남편이었다. 목이 칼칼하다고 했다. 회사 동료의 확진 소식에 컨디션을 예의 주시하다 직감했을 것이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아이들과의 접촉은 없었다. 마스크를 벗은 채 5분 정도의 마주침이 있었지만, 나도 아이들도 모두 음성이었다.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내는 일상이 이렇게 고마운 적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남편의 증상은 경미했다. 식사를 담은 쟁반을 건네며 슬며시 본 모습은. 아침 운동을 시작으로, 회사 업무를 보고, 저녁이면 누워서 핸드폰을 보았다. 어떤 날은 너무 답답했는지 쿵쿵- 쓱쓱- 앞 베란다 청소까지 했다. 삼시세끼 만들고 아이들을 챙기며, 차라리 내가 방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통이 나기도 했지만. 코로나 가족 확진 이야기에 달린 댓글을 읽고는 뜨끔했다. 가장 아팠지만 가족들의 끼니를 챙겨야 했던 엄마들의 고생담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남편이 덜 아픈 것도 내가 옮지 않은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을 고쳐먹고 봄나물을 다듬고 씻으며 식사를 챙겼다.



일주일을 무사히 보내고 음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감히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봤을 때만큼이나 놀랍고 기뻤다. 병원을 나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랗게 개나리가 펴 있었다. 한 주가 지나자 벚꽃이 만개하고, 내리는 봄비, 떨어지는 꽃잎에도 감개무량했다. 당연하게 누려 온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었던가! 격리의 고단함을 털어버리고 봄을 만끽하며 그렇게 삼 주가 흘렀다.




그래도 벚꽃 구경은 하고 와서 다행이지 않은가.


어느 날 새벽, 둘째가 열이 났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빠가 확진된 지 3주가 지났는데. 다음 날 병원에서 선명하고도 완벽한 두 줄을 보았다. 아빠에게 옮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냥, 그때  옮을 걸 그랬나! 대체 어디서 옮은 것일까!’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뒤엉키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알 수도 없고, 알아서 무엇하랴! 나와 첫째는 음성이었고 대응만이 살 길이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 국이라도 끓여놓아야 한다는 이웃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집 안을 간편 모드로 치우고 쑥 한 봉지를 뜯어 된장국을 끓이고 온라인으로 장을 봤다.




해열제 한 번에 컨디션이 좋아져서 ‘코로나 별 거 아니네~’ 가볍게 넘겼다가 혼이 났다. 둘째 날 40도 가까이 열이 올랐던 것. 해열제는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물수건으로 닦으며 꼬박 하루를 아프고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평상시의 컨디션에 약간의 가래만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코로나는 O형만 걸리는 거냐며, 아빠는 갑자기 통계조사를 했지만, 이틀이 지나고 B형인 첫째가 열이 났다.




나만 남았다. 둘째가 걸린 날 필사적으로 옮기 위해, 같은 물컵을 쓰고 하루 종일 붙어 있었지만 증상이 없다. 무증상 감염일까 진단 키트를 해보아도 선명한 한 줄. 아이들 격리 해제일에 증상이 발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하고 싶은데. 백신 미접종자에 체력도 좋지 않은 내가 살아남다니! 인체의 신비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각오였을지도 모르는 농담을 남편에게 건넸다. “정신력으로 버티면 될까? 애들 보려면 나는 살아남아야 돼!”





자만이었나, 과신이었나! 4일째 되던 날 밤, 두통이 찾아왔다. 다리가 저릴 만큼 순환이 안되더니 밤새 오한에 시달렸다. 감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나마 아이들이 다 낫고 마지막에 걸려서 다행일까! 열은 내렸지만 오한의 후유증인지 등짝을 펼 수가 없었다. 아픈 목은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라고 얘기한다. 이제는 누워서 마음껏 아파야지. 다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배달을 여러 번 시켰으니. 아, 부디 용서하소서...



비록 두 번의 코로나를 겪는 불운을 겪게 되었지만. 음식 쿠폰을 보내준 가족. 간식과 반찬을 챙겨 준 이웃. 계속 안부를 챙겨준 친구. 학교 준비물을 문에 걸어두고 가신 선생님까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틀을 끙끙 앓고 살아났다. 국 끓이고 남은 쑥이 생각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잊혀진 쑥도 속이 상했을까, 거뭇한 부분들이 생겨있었다. 다듬어 빠싹하게 구워진 쑥전을 아이들과 뜯어먹으니 조금 기운이 돌았다.



올해의 봄은 더 기억에 남겠지. 두 번의 코로나로 2주 동안 내 방을 여행하는 특권을 누렸으니. 그 덕분에 집을 나서면 세상 모든 게 더 반갑게 느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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