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일한다고 했나?"
구순이 넘으신 시할머니께서 대뜸 말씀하셨다. "사람은 일을 해야 돼!" 작년 여름엔가 뵈었을 때 마지막으로 하신 그 말씀. 어쩌면 "사람은 돈은 벌어야 해!”였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에 희석되어 말은 희미해졌지만, 마음에는 퍼렇게 멍자국이 남았다. 당시 다급하게 흘러나온 대답을 기억하고 계셨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째가 조금 더 크면 하려고요.” 할머니는 나의 직업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계신 걸까. 그리고 올해,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일을 몰아주며 살아왔다. 살림과 육아를 1도 도와줄 수 없는 남편과 돈을 1도 못 버는 아내로. 저 멀리서 각자의 골대를 지키다가 10년이 흘렀다. 분명 같은 팀인데 말이다.
"뭣이 중한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잦은 해외 출장과 밤낮없이 일하는 남편을 보고 이웃집 엄마가 말했다. 그저 뒤돌아 볼 겨를 없이 주어진 여건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본 날. 저녁 산책을 나서는 가족의 뒷모습을 부러워하는 나와 그 한 마디가 함께 기억에 묶여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나와는 달리, 언제나 긍정 모드로 무장하고 살던 남편에게 한계가 왔음을 느꼈다. 건강검진 결과지의 수치들이 아슬아슬했다. '정상'에서 '주의와 경계'로. 불안한 단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달도 많았다. 강도 높은 업무와 잦은 술자리에 몸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인생에서 40대는 어떤 시점일까. 미리 계획된 파이어도, 즐기고 보자는 욜로도 아니지만. 갭이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일. 앞으로의 방향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기도 해야 한다고. 쉼 없이 달려온 남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내가 먼저 깨달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내게 어울리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의 식비와 생필품비, 공과금, 세금 정도만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면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보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는 일. 인생의 방향에 대한 물음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회사 그만두는 거 어때?"
몇 년 만에 야식으로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들이키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당돌하고 대책 없는 나의 말에. 남편의 눈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우리는 도시를 찾기 시작했다.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배울 수 있는 학교. 명절이나 휴가 때 양가로 갈 수 있는 적정한 거리도 염두에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합심해서 신이 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홀린 듯이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왔다. 꽉 막힌 반대편 차선을 보며, 조금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남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방향과 반대로 사는 것은 어떤 걸까?
짧게 글을 메모하다가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우리에게는 곰스크라는 이상향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달리는 기차에서 잠시 내리고 싶었다. 옳은 결정은 없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더 중요했다. 실체도 모를 곰스크를 쫓다가 지금의 행복을 잃지 않도록.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에요.
그래서 강원도로 이사를 왔다.
작지만 더 알차게 살고 싶어서.
이제는 각자가 아니라 함께.
잃어버린 10년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