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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Sep 22. 2022

지금 아니면 언제 해?



"아, 애들이 몇 학년인지 잘못 말했네.."



직장 상사의 물음에 아이들 학년을 잘못 대답했다는 남편. ‘아니, 어떻게 그게 헷갈릴 수가 있어!’ 한숨이 나오다가도, ‘15년간 일과 혼연일체로 살아서 그렇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남편은 일에 짓눌려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의 뇌 속 뉴런들은 업무에만 반응하는 걸까. 뇌에서 장기 기억으로 보내지는 중요도의 기준이 회사라는 단어임이 분명했다. 집안의 대소사에 관해서는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양가의 안부나 행사는 모두 나를 통해서 이뤄졌는데. 믿어줘서 고맙지만 가끔은 너무 믿어서 서운할 때도 있었다.




"요즘 축구는 다니니?"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는 시간은 아침 10분 정도. 그마저도 늦잠 자는 둘째는 가끔 못 보는 날도 있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한 주간의 이슈들을 모아 한꺼번에 공유하는 가족. “야, 그래도 어떻게 안 싸우고 잘 살아?” 친구의 물음에 “만나야 싸우지!!” 정말로 그랬다.



다른 가족들이 캠핑이나 여행을 다닐 때, 우리는 주말마다 한국기행과 세계 테마 기행을 보는 것이 낙이었다. 연휴는 여름휴가와 명절뿐인데, 먼 시댁에다녀와야 했고.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그 대리 만족으로 주말마다 EBS를 보면서 어찌나 재미있고 힐링이 되던지. “우와~ 저기 진짜 좋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살아볼까?” 잠시 꿈만 꾸다가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우리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첫째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자 조바심이 났다. 어렸을 때야 엄마인 나 혼자서도 잘 키웠다지만, 남자 아이들인지라 아빠의 역할도 중요했다. 주말마다 캐치볼 하는 아이들과 아빠.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그림이었는데. 이 시간이 조금씩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가족보다 친구가 더 좋은 시기가 곧 찾아올 텐데.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되는 걸까….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그려봐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남편도 동의했지만 대부분의 가장이 그렇듯, 경제적 책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는 최고치에 다다랐고, 근무 환경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앞으로 10년을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고?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다면, 2년 간의 소비 단식으로 가계부가 매우 심플해졌다는 것과 어떤 상황이 와도 의연하게 견딜 수 있는 마음이다. 다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들 교육 문제였다. 최소한으로 좋아하는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을 보내고 있지만, 둘을 보내자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도시에 사는 이상 학원을 포기하는 일은 힘들다. 남편도 결국 같은 업계의 일을 지속해야만 할 것이고. 그럼, 사는 도시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photo by unsplash


If not now then when?




지금 아니면 언제해!



휴지기를 거친 밭은 농작물을 풍성하게 길러낸다는 오비디우스의 말처럼. 땅도 쉼이 필요한데 하물며 인간인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아파서 쉬어야 되는 상황이 오는 것보다, 아프기 전에 잠시 쉬어보자고. 마지막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목표가 아니라, 달리는 여정 자체가 인생이니까.




어느 , 가수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소은 씨의 출간 관련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100시간씩 일하다가 자신의 방향과 일치하는 길을 계속 찾기로 했고, 4 차가 되었을  갭이어를 택했다고 했다. 그녀는 갭이어를 ‘스스로 부여한 안식년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살아야 하는데 살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쉼을 통해 재점검했다는 겁니다. 방향을 다시 잡고 의도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과정이었죠.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40대의 갭이어.

그래. 맞아. 우리도 시간이 필요해.

일단 우리의 삶을 먼저 정돈해 보자.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은 도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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