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두 칸이 비워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반포장 이사를 선택했다. 가전과 가구는 이사 업체에서, 나머지 짐들은 계약자가 직접 포장하고 정리해야 한다. 남자 패커 분들 3명만 오기 때문에 1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감당해야 하는 수고가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바쁜 분들은 포장 이사를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3개월 정도의 물건 정리를 마치고, 이사 일주일 전 박스를 요청했다. 4년 전에는 모든 짐을 나 혼자 포장하고 담았는데, 이번 이사의 주인공인 남편은 나 대신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발적 고생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즐거울 수 있다고, 남편도 이번 이사에서 깨닫지 않았을까!
주방 살림과 일부 옷들만 내 담당이었는데, 두 번째 경험이다 보니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제일 번거로운 포장은 그릇과 주방 살림이다. 예전에는 하나씩 에어캡을 싸고 과도하게 테이핑을 했었는데. 포장을 풀 때 힘들고 쓰레기도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크기가 비슷한 그릇들은 함께 포장했다. 소창 손수건이나 행주 등을 사이에 끼우고 한꺼번에 에어캡을 둘렀다. 다행히 깨진 것 하나 없이 무사했고, 테이프를 벗기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12년을 함께 한 냉장고는 3번째 이사에서 바퀴 한쪽이 부러졌다. 작고 가벼운 냉장고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상의 끝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이사 한 달 전부터 타이트하게 장을 봤다. 냉동실은 텅 비어 두면 냉동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수병 같은 플라스틱 통들을 얼려두었다. 이삿날 아침, 냉장고 안 음식들을 아이스 가방 2개에 나눠 담았다. 얼려 둔 아이스 팩과 플라스틱 병도 함께 넣는다. 이 모든 걸 직접 챙겨야 하는 부담감이 무겁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사 후 물건들이 바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즐거움에, 반포장 이사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옷이 가장 간단하다. 재사용하는 박스들이기 때문에 옷이나 이불을 넣을 때는 새 비닐을 깔고 넣는다. 업체에서 깜빡하는 경우가 있으니, 박스 받을 때 함께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좋다. 개어진 옷들은 남편과 나, 아이들 옷을 구분하여 박스에 차곡차곡 담고,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그대로 넣었다. 이사 가서 바로 꺼내 걸어둘 수 있도록.
이삿짐을 싸기 직전에 한 일이 있다. 바로 평면도에 가구 배치를 그려보는 것. 동시에 수납공간과 물건의 양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좁은 집이어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걸 직접 그려 넣으면 보다 선명해진다. 커튼과 레일의 사이즈 체크도 잊지 않는다. 가져갈 커튼을 골라서 세탁 후 박스에 담고, 남는 커튼은 일부 판매하고 필요한 분에게 나눔 했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이룬 공간을 다시 비우는 일은 묘하다.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면서 다정했던 공간을 마음에서 떠나보낸다. 개운함과 공허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빈 서랍의 먼지를 쓸어 모았다.
모든 것을 제로화할 수 있는 것이 이사의 미덕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지만. 단, 이것 하나만은 남겨둬야겠다. 공간에 담긴 우리 가족의 추억만큼은.
7시 30분 이사가 시작되었고,
9시 10분 트럭이 강원도로 떠났다.
4년 전 이삿날처럼 부슬비가 내렸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설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