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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an 31. 2024

문 앞에서

어머니 간병기

엄마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오직 누우려고만 들었는데, 누워 있는 것조차 편치 않아서 몇 시간 간격으로 침대와 소파를 비척비척 옮겨 다녔다. 소파로 다가가 누워 있는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지만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월요일에 성연이네 아버지가 죽었어.”

내가 말했다.

“잘 했다.”

엄마가 눈을 번쩍 뜨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 엄마에게 그런 눈빛이 남아 있다니. 무표정하던 엄마의 얼굴이 꽃이 피어나듯 환하게 피어났다.

“지난 번에 왔던 그이?”

“아니, 성연이, 조성연.”

“잘 했네.” 

엄마는 성연의 결혼과 출산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처럼 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몇 살인데?”

“엄마랑 동갑이야.”

성연의 아버지와 엄마는 35년생 동갑으로 공통점이 많다. 같은 또래의 자식이 셋이고 병약한 배우자와 사별한 뒤 혼자 살았으며 건강했다. 그런데 80대 중반이 넘어가며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올 초부터는 혼자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나는 그 나이에 죽으려고 해도 그렇게 안 죽어지더니.”

‘나는 죽으려고 해도 그렇게 안 죽어지는데’라는 말을 엄마는 틀리게 말했다. 엄마에게 한국어는 점점 외국어가 되어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대꾸를 안 하고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는데, 내 말을 이해 못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대답할 단어를 떠올리기 힘들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 이전에 말 할 기운이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누가 미운 것도 없고. 내가 없어졌다니까. 텅 비었어.” 올 봄, 나를 배웅하러 나온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엄마의 무표정에서 의자나 주차경계석에서 느낄 법한 무심함이 느껴졌다. 엄마는 세상 모든 것에 점점 무관심해졌다. 자식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만 보면 하던 ‘밥 먹었냐?’는 말을 하지 않게 됐고, 지겹도록 하던 옷차림에 관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양평에 이사하고 나서 내가 그 집에 처음 가던 날, 엄마는 나를 배웅나와 몇 정거장을 같이 걸었다내가 양수역까지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 먼 길을 혼자 걸어가냐며 따라 나온 것이다엄마는 나한테 버스를 타라고 하고 나는 엄마한테 그만 들어가라고 옥신각신 하며 걷다가결국은 엄마가 멈춰 서서 뒤돌아 가는 나를 배웅했다엄마는 언제나 버스정류장에 나와 나를 배웅했다그런데 버스정류장에 주차경계석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날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를 배웅 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병은 치매와 우울증인데, 우울증이 더 문제다. 우울증으로 인해 무기력해서 잘 먹지 않고 누워만 있다 보니 기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떨어지니 더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울증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다리에 힘이 없어 침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안간힘을 써야 하고 숟가락을 잡은 손이 저 혼자 벌벌 떨리고 코에서는 콧물이 항문에서는 방귀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며 입을 달싹할 기운도 잠시 잠깐을 앉아서 버틸 기운도 없는 엄마에게 무기력은 가장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로 보인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엄마를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다. 죽음에 대한 갈망은 엄마를 지배했던 다른 욕망들만큼 간절하다. 살다 보면 이혼조정기간의 부부처럼 볼 일이 다 끝나고 마음이 떴는데 몸만 묶여 있을 때가 있다. 이혼을 앞둔 부부는 한 집에 살아도 부부라고 하기 애매하다. 여름의 끝을 여름이라고 하기 애매하고 겨울의 끝을 겨울이라고 하기 애매한 것처럼 말이다. 여름의 끝에는 이미 가을이 들어와 있고 겨울의 끝에는 봄이 완연한 것처럼 한 시기의 끝에는 다음 시기의 시작이 들어와 있기 마련으로 생의 끝에는 무기력과 무관심의 얼굴을 한 생 이후가 성큼성큼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연은 눈물이 많아서 얼굴도 본 적 없는 이의 장례식에 가서 상주보다 더 슬프게 우는 게 고민이었다그런데 자기 아버지 장례식에서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달 전부터 음식을 삼키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해서 포도당 주사를 맞으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 

성연이 말했다. 

“몸이 그렇게까지 다 돼야 죽을 수가 있구나.” 

내가 말했다. 

“사람마다 다 달라.” 

“우리 엄마가 죽는 게 소원이라 요즘 엄마 소원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기도를 잘 해야 돼. 내가 영험한 기도처를 알아.”  

성연이 스마트폰을 열어 바위에 새겨진 부처 사진을 보여줬다.  

“아버지 집에 갔다가 나와서 걷는데 골목에 이 약사여래상이 있는 거야. 내가 생전 기도를 안 하는데, 그날은 간절한 마음이 들어서 그 앞에서 기도하고 걸으면서도 계속 기도했어. 약사여래가 병을 낫게 해주는 부처니까 처음엔 약사여래를 부르며 기도했어. 근데 이상하게 한참 기도하다 보면 지장보살을 부르고 있고 또 한참 기도를 하다 보면 지장보살을 부르고 있는 거야. 

지장보살은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보살이다. 성연의 아버지는 며칠 뒤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다녀온 주말에 엄마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갈게.”

내가 방문을 열고 말하자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가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잘 가.”

엄마는 그 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엄마 집을 나와 양수역을 향해 걸었다. 엄마가 나와 같이 걷다가 멈춰 서서 나를 배웅하던 언덕을 지났다.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섰던 엄마의 모습이 가슴에 선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나는 기도했다.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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