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현 Jan 31. 2024

회복

어머니 간병기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한 시간도 못 자서 진우가 일어나 돌아다니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 집에 가는 날이라 거기 가서 자자고 생각하며 일어났다. 

7시에 집을 나섰다. 간밤에 내린 눈에 길이 반들반들한 빙판이 돼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눈 위를 골라 걸으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침 놀이 걸린 언덕 아래서 마을버스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운이 좋았다. 한성대입구역에서 4호선을 갈아탈 때도 동대문역에서 1호선을 갈아탈 때도 회기역에서 중앙선을 갈아탈 때도 차를 길게 기다리지 않았고, 양수역에 내리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오네요.”

택시기사가 말했다.

“그러게요.”

내가 대답했다.”

“아침에 두물머리까지 사진기사 손님을 두 분이나 모셔다 드렸어요.”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풍경이예요.”

택시가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가 고향이세요?”

택시기사가 물었다.

“아니에요. 엄마가 여기 사세요.”

“그러시구나. 맛있는 거 많이 드시겠네요.”

택시에서 내렸다. 마을회관 앞의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한 주 전에도 눈이 왔고 택시에서 내리자 마을회관 앞의 눈이 치워져 있었는데, 비질은 엄마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뚝 끊겨 계단부터 현관까지 눈이 소복했다. 같은 상황을 예상하며 마을회관을 돌았다. 그런데 비질이 엄마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 현관까지 이어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픈 노인 혼자 산다고 누군가 비질을 해준 것일까? 계단을 내려가 현관으로 다가가니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티브이조차 켜지 않은 지 오랜데, 누가 온 것일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놀랍게도 엄마가 밥을 차리고 있었다.

“눈, 엄마가 치웠어?”

내가 물었다.

“어, 내가 지금 눈 치우고 들어와서 배고파서 밥 차리는 거야.”

엄마가 대답했다. 

엄마의 건강은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약을 바꾸고 주간보호센터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표정이 밝아졌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걸 덜 힘들어했고 한 주 전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설거지를 해 나를 놀래켰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건강이 어느 정도 나아진다 해도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는 없을 거라고 믿었다. 약해질 대로 약하진 엄마에게 그럴 힘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서 엄마가 예전과 같은 아침을 맞고 있었다. 

“어제 파마했는데, 파마가 잘 되지 않았냐?” 

“어.”

“미용사가 내가 나이가 많은 데도 얼굴이 너무 예쁘다면서 내 사진을 찍어 보내줬어.”

미용사 말 대로 피로와 무기력이 싹 가신 엄마의 얼굴은 예뻤다. 엄마는 생기 있는 얼굴로 나에게 음식을 권하고, 나의 옷차림을 지적했다. 내가 알던 엄마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귀환이 기쁘기 보다 어리둥절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갔더니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이 말짱하게 살아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구는 걸 보게 된 영화 속 인물의 심정이 나 같을 것이다. 먼 곳에서 돌아왔다면 그에 적합한 인사와 설명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고, 엄마가 그렇게 나오니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리둥절함을 감추게 됐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숟가락을 놓자 마자 눕기 바빴다. 그런데 이 날은 밥을 먹고 나서 침대에 눕지 않았다. 소파에도 눕지 않았다. 엄마는 마루와 방을 오가며 비질과 걸레질을 하고 물건을 정리했다.

“이리 좀 와 봐.”

내가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자 엄마가 나를 불렀다.

현관의 선반 위에 비닐에 포장된 흙 두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요양 보호사가 도자기를 가르쳐 달라고 하도 졸라서 다음 주부터 도자기를 가르치기로 했어. 자기 친구랑 배운다고.”

한 달 전 엄마는 우리나라에 몇 없는 노인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자기가 지어주는 약을 열흘만 먹으면 도자기를 왕왕 할 수 있게 될 거래.” 엄마는 병원에 다녀와 그렇게 말했다. 도자기를 하게 될 거라고? 그것도 열흘 만에? 나는 의사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정말 의사 말 대로 될 모양이었다.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인데, 맘 편하게 기뻐하게 되지 않았다. 작년 봄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엄마의 건강이 여름에 반짝 회복된 적이 있다. 그때 엄마의 건강이 아주 회복된 줄로만 알았는데, 코로나에 걸리며 건강은 도로 나빠졌다. 나는 겨우 되찾은 생기가 또 물거품처럼 스러질까 봐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이거 내가 그린 거야.”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그린 그림을 가져왔다.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 그림이었다.

“잘 그렸다고 집에 가서 자랑하라고 줬어. 어때?”

“잘 했어.”

“내 거만 벽에 걸었어. 집에 가져가라고 준 것도 내 거 밖에 없어.”

엄마는 그림을 창가에 세워놓았다. 

“괜찮지?”

엄마가 뒤로 물러서서 그림을 보며 물었다.

“어.”

밥을 먹고 한참 시간이 지났지만 엄마는 방에 들어가 눕지 않았다. 나는 잠을 못 잔 데다 식곤증이 겹쳐 몹시 졸렸지만 엄마가 안 자니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있었던 일을 느릿느릿 단어를 찾아가며 열심히 얘기했다. 센터는 70대의 목사 부부가 운영한다고 했다. 친절한 목사님이 아침마다 집에 와 엄마를 데려가고, 엄마가 일등으로 센터에 도착하면 사모님이 깨끗한 이불을 펴 놨다가 몸을 녹이라면서 자기를 그 속에 쏙 넣어준다고 했다. 사모님은 가수들이 무대에서 입는 것 같은 옷을 날마다 갈아입고 그릇도 끼니마다 바꿔가며 간식과 점심을 차려주고, 일곱명의 이용자는 그걸 하나도 안 남기고 싹싹 먹는다고 했다. 하루 세 번 낮잠을 자고 운동시간에는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운동을 한다고 했다. 내가 우주선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그걸 설명하려 애쓰다가 종이에 그네를 그렸다. 

엄마의 말은 느릿느릿 줄기차게 이어졌는데 나는 졸음이 쏟아져서 더는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안 졸려?”

내가 물었다.

“몇 시야? 12시야? 다른 날 같으면 벌써 눕고 싶었을 텐데.”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친구와 올나잇을 하며 수다 떠는 아이처럼 상기된 얼굴로 주간보호센터에서 있었던 일과 도자기를 할 계획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얘기했고, 나는 졸음을 참으며 그 얘기를 들었다. 

창밖에서 눈이 녹고 있었다.


(2024. 1. 7. 일요일)

작가의 이전글 문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