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현 Aug 20. 2024

오디

"오디 따러 가자."

“오디 따러 가자.”

내가 말했다. 

“뭐?” 

엄마가 물었다.

“오디, 뽕나무 열매 따러 가자고.”

“그게 뭐 맛있냐?”

“맛있어.”

“맛없어.”

“쨈 만들게.”

“쨈?”

“맛있겠지?”

“뭘 쨈을 만들어.”

“안 간다는 거지?”

“난 못 가.”

“알았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나는 서둘러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해가 뜨거웠다. 챙 넓은 밀집모자로 내 몸 하나를 간신히 가리는 그늘을 만들며 달리듯이 걸어 뽕나무에 이르렀다. 나무에 오디가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잘 익은 오디는 짙은 포도주색을 띤다. 붉은 색은 오디가 덜 익었다는 표시로 올록볼록한 형태 깊숙이 붉은 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들은 힘주어 당겨야 열매 자루가 뚝 소리를 내며 가지에서 떨어지고, 입에 넣으면 알갱이가 단단하게 씹히면서 신맛이 난다. 아직 준비가 덜 됐으니 따지 말라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붉은 기가 완전히 사라진, 까맣게 윤이 나는 오디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것은 손끝이 닿자마자 가지에서 툭 떨어졌고, 내가 깜짝 놀라 붙잡았더니 손가락 사이에서 뭉크러졌다. 뭉크러진 오디를 입에 넣었다. 예상대로 부드럽고 달았다. 나는 잘 익은 오디를 골라먹으며 우리 사이의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에 감탄했다. 우리는 닮은 데가 거의 없는 데다 길 가다 몇 번 마주친 게 고작인 사이인데 말이다. 


짧은 시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바구니를 밑에 받치고 다른 손으로 가지를 훑으니 바구니 안으로 오디가 두두두두 작고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바구니에는 불청객들도 같이 떨어졌다. 뭣들을 하는 건지 잎에 열 지어 모여 앉아 있는 팔각형 벌레들, 가지 사이에 해먹을 치고 누워 있는 애벌레들, 뽕나무이가 만든 실타래 엿처럼 끈적끈적한 흰 실, 균에 감염돼 석고가 되어 버린 희고 딱딱한 오디 등등. 잘 익은 오디가 나의 오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만족시키는 데 반해, 그것들은 닭살 돋는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평소 같으면 그것들을 보자마자 나무에서 멀찌감치 물러섰을 거다. 그러나 오디를 포기할 순 없었다. 처음엔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디를 땄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이 있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나는 온 동네의 뽕나무 위치를 또르르 꿰고 있어서 한 나무의 오디를 다 따면 곧바로 다음 나무로 이동했다. 논두렁의 뽕나무, 개울가의 쓰러진 뽕나무, 과수원 담 너머로 가지를 뻗은 뽕나무를 거쳐 콩밭 가의 뽕나무로 갔다. 저만치 콩밭에서 엎드려 일하는 농부가 보였다. 나는 농부를 등진 채 길 쪽으로 뻗은 가지의 오디를 따다가 나무 안쪽의 것을 따려고 무릎까지 자란 단풍잎 돼지풀을 밟으며 풀숲으로 들어갔다. 한 그루의 나무인데 바깥쪽과 안쪽은 딴 세상이었다. 관목과 얽힌 나뭇가지가 낮은 지붕을 만드는 안쪽은 컴컴하고 시원하고 은밀했다. 빽빽한 가지에 가려 농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린 줄 알 것이다. 오디를 따는 동안 얽히고 설킨 가지 사이로 들어온 빛의 조각들이 나의 손등과 발 아래 넓은 잎사귀들에 밝고 선명한 무늬를 만들었다. 열매를 따려고 자꾸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소녀가 나오는 서양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늘이라 딸 만한 오디가 많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도로변의 뽕나무로 갔다. 길 아래 개울가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뽕나무가 길 위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가지에는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굵은 오디가 달려 있었다. 가드레일에 붙어 서서 가지에 손을 뻗어 보았다. 조금만 다가가면 손이 닿을 것 같았다. 가드레일을 넘어가서 다시 손을 뻗었다. 발 아래는 가파른 낭떠러지인데 가지까지는 아직도 한 뼘이 부족했다. 떨어질까 봐 무서운 걸 참으면서 가지를 향해 조금씩 발끝을 옮겼고, 마침내 손끝이 가지에 닿았다. 까치발을 들고 팔을 있는 대로 뻗어 가지 끝을 붙잡아 당기니 가지 전체가 내 쪽으로 쓱 당겨졌다. 한 손으로 가지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오디를 땄다. 크고 실한 오디를 하나라도 떨어뜨릴 새라 조심조심 남김 없이 딴 뒤 다시 낭떠러지 쪽으로 발끝을 야금야금 옮기며 더 먼 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름이 시작돼 잘 익은 오디가 떨어져 땅바닥을 점점이 까맣게 물들이면 길을 가다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가지에 달린 오디를 따먹는데, 먹다가 돌아설 때마다 그 많은 오디를 놔두고 가기가 여간 아쉽지 않다. 임자 없는 나무에 달린 것이니 따는 대로 다 내 거라는 생각에 욕심이 나고, 오디를 따는 게 재밌어서다. 질릴 때까지 오디를 따보고 싶었다. 쨈을 만들기로 한 건 그래서다. 쨈을 만들면 오디를 원 없이 딸 수 있고, 그렇게 딴 오디를 쟁여두고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집을 나설 땐 오디를 한 바구니만 따려고 했다. 그러나 오디를 한 바구니에 넘치게 따도 이만하면 됐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바구니를 집에 가져다 놓고 더 큰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해질 무렵, 더위에 익은 얼굴로 바구니 가득한 오디와 밑 빠진 허기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뭘 그렇게 가져와요?” 정자에서 앞집 할머니가 물었다. “오디요.” 내가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땄어요?” 할머니가 물었다. 거기 서서 대꾸를 하다간 오디를 좀 드셔보시란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만 까딱 숙여 보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서양동화의 소녀가 바구니 가득 열매를 따 집으로 가져가면 소녀의 엄마는 그것을 끓여 쨈을 만든다. 나는 동화 삽화에 그려진 것처럼 커다란 냄비에 오디를 넣고 설탕을 부었다. 레시피에는 15분에서 30분을 끓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오디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은 데다 양이 많아 2시간을 넘게 끓였다. 완성된 쨈을 두 개의 단지에 나눠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 날 쨈을 한 숟가락 덜어 엄마에게 줬다. 엄마가 쨈을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했다.

“맛있지? 놀랬지?”

내가 물었다.

“어. 지금 가도 딸 게 있을까?”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오디?”

“어.”

“왜? 따러 가게?”

“쨈을 더 만들면 좋잖아.”

“쨈 많아. 두 단지나 있어.”

“이건 오래 두고 먹어도 되는 거니까. 첫째도 주고, 막내도 주고.”

“맛없어서 안 먹는다더니.”

그러나 나 역시 남겨두고 온 오디가 여간 눈에 밟히지 않았다. 어제까지 붉은 기가 남아 있던 것들이 그새 또 까맣게 익었으리라.

“엄만 안 갈 거지?”

나는 바구니를 챙겨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2024. 6. 2)

작가의 이전글 늦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