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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아 Apr 19. 2024

프롤로그

상실에 대해




날따라 새로운 카페에 가고 싶었고 그곳은 음료를 일회용 용기에 주는 곳이었다. 그 뜻은 일회용 쓰레기가 좀 더 나오고 몸이 환경 호르몬에 노출 된다는 이야기다. 한참을 머그잔으로 바꿔 달라 말하고 싶은 것을 망설이다 어물쩍 시간이 지났다. 가뜩이나 속상한데 망설이며 말하지 못한 나까지 스스로 질책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점을 찾아 간신히 할 일을 끝내며 한 잔을 모두 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휴지통을 들렸다. 아주 널찍하고 깨끗한 휴지통에 검정 비닐이 깔끔하게 씌워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쓰레기를 쥔 오른손에서 비닐들이 빠져나가는 순간 온몸에서 무언가 확 빠져나가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쓰레기통과 빈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언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린 것만 같은 철렁함이 들어선다. 다행히 물건은 나에게 잘 붙어 있었다. 두뇌는 당연히 쓰레기로 인식하고 버렸는데, 몸은 중요한 걸 버린 반응이 돌아왔다. 이 부조화는 몇 초간 나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아기들은 태어나면 반사작용으로 무언가를 꽉 붙잡는다고 한다. 그것이 생존에 필요한 반사라고 한다. 보이는 족족 손으로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 그 조그마한 아기도 처음부터 무언가를 쥐고 싶어 하지 잃고 싶어 하지 않나 보다. 그게 설령 쓰레기더라도 손이 비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보단 필요없는 것이라도 쥐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의 상실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생존 본능.









십 대 후반이 되는 동안 나는 얼마만큼 상실을 경험했을까. 내가 쥐었다고 믿었던 것들을 스스로 놓기도 하고 놓쳐버리기도 하고 놓지 못하다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을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상실 그 뒤의 감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많은 상실감은 도대체 어디로 가 떠돌고 있을까?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하는데. 대부분은 쥔 것과 쥐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나도 그랬다. 아니면 쥐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라든가. 그것들 이면에는 이미 잃어버린 마음들이 종종 물웅덩이 속 미꾸라지처럼 감정을 탁하게 만들기도 했을 텐데.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누구도 잃어버린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지난 날의 시간, 열정, 꿈, 마음들일 수도 있다.



왜 우리는 상실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상실한 이야기들은 더욱 '잘' 말해져야 '잘' 보낼 수 있을 텐데. 아파서 차마 들여다보지 못한 상실 후 당혹감들과 일일이 만나 하이파이브 하고 싶어졌다. 그래야 앞으로 무엇을 쥐더라도 그래서 또 언젠가 손에서 놓치게 되더라도 화들짝 놀라지 않을테니. 잘 버리고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우리의 세계가 상실의 시간을 지날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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