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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Apr 18. 2022

20대 여자의 ADD 극복기

(feat. 조용한 ADHD)

안개 속에서 품은 희망


고요한 안암동의 새벽이다.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술에 취한 새내기들이 집 앞 거리를 지나가면, 책 넘기는 소리만 방을 채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해야 할 과제나 공부는 없다. 모처럼 무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어제 집 앞에 배달된 주간지를 집어 들고 침대에 앉는다. 어지러운 정세를 담은 정치면을 넘기고 평소 즐겨 읽는 사회 기사나 서평을 읽는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이젠 주간지보다 호흡이 긴 책을 읽고 싶다. 일본 고전 소설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금각사>를 책장에서 꺼내 든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특이했지만 50쪽을 넘어가니 금세 소설에 흥미를 잃었다. 지난번에 읽다 만 다른 책을 침대 머리맡에서 꺼낸다. 어느덧 침대엔 책이 널브러져 있고 시간은 벌써 새벽 5시다. 잠이 오지 않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잠시 무릎에 내려놓고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눈은 책을 응시하고 있지만 곧 초점이 흐려지고 머릿속이 뿌옜다. 하나의 책을 읽고 있으면 다른 책이 읽고 싶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싶기도 했다.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깜박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건 좋았지만 약 하나 못 먹은 것 때문에 몇 시간동안 산만하게 책을 뒤적거렸다는 생각에 못내 억울하다. 최근 20대 여성들에게 많이 발견되는, ADHD의 짝퉁 병인 ‘ADD’를 앓고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ADHD에서 ‘과잉행동’만 빠진 병이다.


사회적인 편견에 가로막혀 ADHD는 남자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병이었다. 여자아이들의 산만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자는 얌전히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성역할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일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문제점을 느낀다. ADHD와 달리 과잉행동이 없는 ADD는 어린 시절 발견되기 더욱 어렵다. 나 역시 이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인지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낸 후였다. 식탁에서 엄마와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는 내게 아빠가 조용히 다가와 하얗고 긴 종이를 건넸다. 


 ‘성인 ADHD/ADD 검사지’


종이엔 예상치 못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순간 불쾌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아빠에게 종이를 돌려주며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저한테 이런 걸 왜 주세요?” 


정신과 전문의인 아빠의 영향으로 정신병에 대한 편견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고 낙인 찍히고, 심지어 아빠가 나를 환자로 바라보았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났다. 아빠와 어색해진 채로 다시 자취방에 돌아왔다.


본가에서 돌아온 이후 심란한 날들을 보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켰는데 평소 좋아하던 채널의 썸네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여성들이 앓고 있는 ADHD에 대한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병을 앓고 있는 여자가 말하는 ADHD 증상에서 산만한 행동을 제외하면 내 행동과 많이 비슷했다. 문득, 학창시절부터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콤플렉스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지진으로 수능이 처음 연기됐던, 5년 전 수능 날이었다. 가장 취약하면서도 맨 처음 보는 국어 과목에서 긴장하지 않으려 청심환을 먹었다. 철저한 준비가 무색하게 낯선 소재의 긴 비문학 지문을 마주하자 처참히 무너졌다. 제발 읽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손은 계속 지문에 밑줄을 그었지만, 머릿속엔 글자가 날아 다녔고 시험지는 땀에 흠뻑 젖어 우글거렸다. 모의고사를 통틀어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그 이후, 수능 국어 점수는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치부가 되었다.


독해력이 좋지 않다는 건 사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높은 등급이 나오는 수학에 비해 국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내가 문과를 택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당장은 수능 성적이 문제였고, 근본적으로는 내 오랜 꿈이 문제였다. 독해력이 좋지 않은 기자라. 스스로도 잘 상상이 안 갔다. 하지만 학창시절엔 눈 앞에 닥친 국어 성적이 우선이었다. 순진하게도 학원이나 과외로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능은 못 봤지만 운 좋게 대학에 입학한 후, 원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 당시엔 단순히 독서량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학창 시절에 학원 공부를 핑계로 책을 너무 멀리 한 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건 독해력이 약하다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또 다른 콤플렉스였다.


그렇게 책에 흥미를 가지려 노력했다. 콤플렉스가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다. 새내기 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점점 힘에 부치던 때가 있었고,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책을 선택했다. 생활기록부에 작성하기 위해 대학교에서 추천해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 취향인 책을 처음 골라 읽었다. 그렇게 고른 책이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책에 매료되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그 이후 꾸준히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고, 책을 읽으며 독해력도 같이 늘리려고 노력했다.


ADD 약물 치료를 시작한 이후, 잊지 못할 날이 있다. 햇볕이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알람 없이 햇볕을 맞으며 눈을 뜬 아침은 오랜만이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그 날은 빼먹지 않고 약을 챙겨 먹었다. 할 일 없는 주말 아침,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머리맡 창틀에 쌓여 있는 책 중에서 <폭풍의 언덕>이 눈에 띄었다. 576쪽. 평상시라면 엄두도 못 낼 페이지 수다. 그날따라 그 책을 단숨에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저택을 휘감는 음산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근원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자연스레 점심을 놓쳤다. 심란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땐 이미 8시간이 지난 후였다. 8시간동안 오로지 책만 읽은 건 처음이었다. 사실 책이 <폭풍의 언덕>이어서 가능했다. 누군가에겐 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2시간 이상 하지 못하는 ADD 환자에겐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이날의 기억이 내게 ‘성취’로 다가오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나의 결핍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ADD라는 병을 인지한 것도 도움이 됐지만, 스스로 독해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크고 작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독해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ADD도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여전히 어려운 글은 읽다가 포기한다. 끈기가 부족해 절반만 읽은 책이 수두룩하다.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읽으려 하는 편협한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핍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 순간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핍을 인정한 것처럼, 결핍을 채우는 것 역시 찬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남들처럼 평범해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는다.



(*윗글은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표절 이슈로 미리 고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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