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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Apr 24. 2022

과학 논픽션에서 발견한 철학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평

운동선수들에게 자신만의 강박이 있는 것처럼, 내게도 시험을 보기 전날 밤에 치르는 의식(ritual)이 있다. 주간지 기사를 읽거나 책을 읽는 거다. 예전에 토플 시험을 보기 전날 밤 시사 주간지를 읽고, 다음날 토플 리딩 지문에 온전히 몰입했던 그 우연적인 선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믿게 되면서부터다.    

  

다음날 리트 모의고사를 준비하며 밤에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했다. 몇 주 전에 충동 구매하여 읽다 말았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끌리진 않았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물고기에 대해 갖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이 대단해 보이고 소재에 대한 편협한 애정으로 그동안 많이 접하지 못했던 과학을 소재로 하여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다소 평탄해 보이는 스토리 구조 때문에 선뜻 책에 다시 손이 가진 않았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며 핸드폰을 보다 한 책 리뷰 유튜버가 이 책을 리뷰한 영상을 봤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그저 이 책 마지막 장까지 봐야 한다는 말뿐입니다. 책 분량 중 2/3, 3/4이 되는 지점에 반전이 있습니다.”     


끈기가 부족해서 책을 끝까지 못 읽는 편이지만 그런 내가 책의 결말을 보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 책을 추천해준 사람이 책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고 당부하면 그 반전을 찾기 위해 어떻게든 책을 읽는다.   

  

처음엔 반전 요소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읽다가 책의 장르가 범죄 스릴러로 바뀌는 순간을 직감하고 몸이 움츠러든다. 스토리가 또다시 변곡점을 지나면서 데이비드의 어두운 이면을 밝히자 미간은 찌푸려진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친한 언니의 지인이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어 무려 5번 읽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가 가진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람들의 인생에 끼친 해악이 묘사된 부분 때문에 다시 읽을 수 없을 듯하다. 사실을 지나치게 생생히 묘사한 룰루 밀러(작가)의 능력 탓에 글을 읽으며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하지만 피해자인 애나와 메리가 사는 장면을 짧게 보여준 부분은 영화 <소울>에서 주인공이 바람에 떠다니는 나뭇잎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장면만큼 강렬하다.     


데이비드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진영 논리에 갇혀 마치 진실은 없다는 듯이 본인이 속한 진영의 인사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룰루 밀러는 그녀가 한때 열광적으로 탐구했던 인물, 데이비드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관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 …… 바로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나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     


작가는 사람이 삶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각자 가면을 쓰기도 하고 데이비드처럼 맹목적인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원천, 즉 자신이 우주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자신의 생각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내심 부족한 독자는 반전이 조금 더 빨리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소소한 아쉬움이 있지만, 생물학자 데이비드의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스토리 구조는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을 반성하게 만든다. 지나치게 솔직하여 때론 당황스럽지만, 어쩌면 죄책감에 의한 자기 고백이었을지도 모를 룰루 밀러 본인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다.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설계된 논픽션이 주는 감동을 또다시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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