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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Aug 22. 2022

안부인사에 담긴 마음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일요일 아침,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부엌 식탁에 앉으면 부모님이 늘 서로에게 꺼내는 말이 있었다. "오늘은 약 없이 잘 잤어요?" 부모님은 주말 부부셨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밖에 듣지 못하는 말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불면증이 있는 엄마 아빠는 약 없이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어렸을 땐 상대방의 잠자리를 걱정해주는 이 흔한 안부인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침대에서 같이 밤을 보내는데도 왜 다음날 잘 잤는지 상대방에게 묻는 걸까. 타인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의미없는 말에 쉽게 관심을 두기도 했던 어린 시절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밤에 잠을 자고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안 건 대학교에서 화석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밤에 자는 건 24시간마다 돌아오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겐 매일 겪는 고역일 수 있다. 핸드폰이나 술 없인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생기면서 올해엔 이틀에 한 번꼴로 뜬 눈으로 밤을 보낸다. 밤마다 보내는 무의미한 시간과 그런 밤을 보낸 날 오후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알게 된 후 타인의 잠자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주인공들은 상대방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해준은 잠복근무 때 망원경으로 집안에 있는 서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서래 역시 해준이 범인을 잡는 현장에 몰래 찾아가는 등 그를 멀리서 바라본다. 관찰 끝에 서로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서래와 해준은 서서히 상대방에게 스며든다. 그들은 말 대신 행동으로 안부인사를 건넨다. 서래는 불면증이 있는 해준을 위해 그가 잠에 들기 전, 그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함께 숨을 맞추어 준다. 해준은 항상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떼우는 서래를 위해 어설픈 중국식 볶음밥을 만들어준다. 영화에선 상대방에 대한 그 집요한 시선이 결국 그들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서로의 시선이 손이 되어 상대방을 어루어만졌을 때, 그들이 생에서 한번이라도 더 완전해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 도서관 데스크에서 함께 근무하는 친구가 있다. 밝은 모습인 날도 많지만, 교대 근무할 때 종종 힘 없는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넬 때가 있다.  시설 이용자가 없을 때면 구부정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한다. 자세 때문에 낮잠 자기에 실패했는지 다시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밤을 샜냐고 내가 물으면 희미한 미소를 띄며 그렇다고 짧게 답한다. 노트북 화면에 당장이라도 닿을 것 같은 목과 불안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친구 몸에 가득한 긴장감이 그대로 내게 전달된다. '레포트 마감이 얼마 안 남았나?'라고 넘겨짚지만 얼마 전에 다른 내용으로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괜시리 마음에 걸린다.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털어놓지 않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그런 시그널이 읽혀도 쉽사리 묻기 어렵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아이유가 불면증을 겪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편히 잠들긴 바라는 마음에 적은 노래 가사다. 미국에 간 지 얼마되지 않은 친구가 이젠 시차로 잠 못 드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레 마음 속 반딧불을 건네본다. 



(글과는 별개로 용감하게 남겨보는 <헤어질 결심> 한 줄 평 : 소재는 트렌디했지만 캐릭터가 모던했는지는 의문이 들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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