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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Jan 28. 2023

부전자전의 오류


 기초논리학을 공부하면 발생의 오류라는 개념을 배우게 된다. 발생의 오류는 기원의 속성이 후대에도 이어질 거라고 착각할 때 발생한다. 해당 개념에 대해 가장 많이 드는 예시는 '부전자전'이다. 부모가 유전자를 물려주니까 부모의 특성이 자식한테도 나타날 거라고 흔히 생각한다. 공부할 때 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는 발생의 오류를 넘어서 날 거의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외모와 성격을 많이 닮았다보니 작은 습관이나 취향도 본인과 겹치는 게 있으면 본인이 그래서 그런 거라며 묘한 자부심을 내비치신다.


 문제는 그 오류가 확대적용되어 아빠와 명백히 다른 나의 면모를 예단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새로운 종류의 음식을 먹을 때 "나영이 이거 좋아하잖아."라고 말하며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다 파악하고 있다. 예측의 정확도만 높아도 할 말이 없을텐데.. 엄마보다도 내 취향을 모르신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학창시절에 아빠가 먼 지방에 계셨어서 10년 넘게 주말에만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유일하게 서로 만날 수 있는 주말조차 나는 학원에 가기 바빴다. 내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아빠의 병적인 집착은 내 학창시절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다는 결핍에서 나오는 듯하다.


 예단하는 범위가 음식 취향 정도면 아빠의 귀여운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점점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단서로 자신이 만든 틀에 날 억지로 끼워넣는다. 정치성향을 멋대로 판단해서 검증하고 나한테 실망한다. 지난 학기에 친구 SNS를 보다 생긴 일을 얘기하면 갑자기 몇 주 뒤에 내 공부 습관을 지적하면서 SNS를 다 끊으라고 화를 낸다. 현재 내가 SNS를 하는지 여부는 아빠의 판단 근거에 없다.


 인간을 말을 통해 발전하고 진화한다. 엉뚱한 발상이어도 타인과 토론하면서 정제하고 발전하면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된다. 하지만 인간이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 자꾸 편견에 갇힌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아빠한테 건네는 말이 나한테 상처로 돌아오자 점점 입을 닫게 됐다. '말을 덜 하면 그래도 내가 한 말 때문에 섣불리 날 판단하시진 않겠지.'라고 멋대로 생각하며 자가당착에 빠진다.


 아침에 아빠의 신경질을 긁는 말을 하고 나오면, 지하철 역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지하철을 기다릴 때 무의식적으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올해 환갑이 된 아빠의 머리가 벌써 하얗게 셌다. 본가에서 생활할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아빠랑 서로 오해가 쌓인 채로 지내야 할까. 답답하면서도 아빠랑 대화하면서 겪을 감정 소모를 감당하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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