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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Jun 21. 2021

살인자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 서평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본인이 평생 혐오했던 행동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순식간에 저지를 수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신념이란 부질없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본인이 받은 상처를 떠올릴 땐 한없이 감상에 젖어 자기연민에 빠지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은 가마득히 잊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모순적인 존재이기에 나약하다.      


살인자는 이런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냉혈한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인 콜드 블러드>에 나오는 딕과 페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클러터 씨의 금고를 털기 위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그 집엔 클러터 씨와 그의 아내, 아들, 딸밖에 없었다. 그들은 계획을 세울 당시 집에 손님들이 있을 수 있다며 자그마치 12명을 묶을 밧줄을 준비한다.      


참혹한 일이 벌어진 현장에서 페리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딸 낸시를 성폭행하려는 딕을 단호하게 말린다. 아들 케니언을 지하실 쇼파에 묶어둘 때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매트리스 받침대에 눕혀둔다.      


이러한 페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혼란스럽다. 그동안 그려왔던 살인자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페리가 딕의 강간 시도 행위를 말려선 안 됐다. 절대적인 악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다. 그는 해병대에서 병사로 있을 때 동성에게 성폭행당한 적 있었다. 본인이 받았던 상처를 똑같이 타인이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뺏을 만큼 무자비하다.     


과거의 기억은 인간에게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하지만 때론 사실과는 다른 낭만적인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때 방어 기제를 발동시킨다. 기억을 왜곡시키든 과거 기억을 끌어다 쓰든, 아무리 이타주의적인 사람이더라도 무의식중에 본인의 잘못에 면죄부를 준다. 페리의 누나는 본인의 가정환경을 범죄의 원인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페리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페리는 충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누나가 클러터 씨 집에 없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페리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못 배워먹은 아빠 밑에서 자라 학교도 제대로 못 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한 사람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를 바라보는 살인자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어나선 안될 금기의 영역을 상상해보면서 평생 페리를 이해할 날이 올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편으론 길에서 죽어가는 할아버지와 떠도는 아이를 차에 태운 사람 역시 페리였다는 사실은 섬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인간이길 포기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혹은 인간이기에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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