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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Jun 21. 2021

가족이 갖는 잔인한 속성

논픽션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서평

책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지 얼마 안된 내게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두께가 두꺼워 흡사 벽돌을 연상케 하지만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이란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흥미로운 후기를 듣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작가는 초장부터 노골적으로 스포일러를 던진다. 미국의 사형제도를 부활시킨 사형수이자 작가의 형인 게리 길모어의 살인과 죽음을 알려준다. 이 논픽션 책은 결말을 알기 위해 읽지 않는다. 몰입감이 넘치면서도 때론 지지부진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700페이지의 여정이 중요하다. 그 안에 게리가 저지른 살인의 근원인 아버지의 가정폭력,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감정 상태, 다른 형제와의 관계, 더 나아가 어머니의 종교인 모르몬교가 가진 폭력적 속성이 담겨있다.   

   

가족력을 읊으며 작가인 마이클 길모어가 느끼고 있었던 감정을 그대로 내뱉은 문장들을 읽을 때면 마음이 동했다. 특히 아래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증오한다. (생략)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난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는 질투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소위 가족 공동의 선을 내세워 여전히 아이들에게, 이미 다 큰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복종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길모어는 꼬리표처럼 떼어지지 않는 가족의 폭력적인 역사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그는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폭력이 태동할 가능성을 없앤다. 형 게리 길모어를 잊으려 했으나 결국 마이클은 게리의 사형 집행날까지 그를 지켜보게 된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와 같이 실제 살인 사건을 다룬 <인 콜드 블러드>에선 살인자 페리라는 인물이 궁금했다면 이 책에선 게리보단 마이클이 눈에 밟혔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사고 치지 않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해내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길모어 집안이란 주홍글씨가 그를 따라다닌다. 살인자 게리 길모어가 자기 형이란 사실을 가슴 속에 품고 형들이 무사히 살고 있는지 전전긍긍하는 삶은 지옥이지 않았을까. 결국 그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만일 마이클이 둘째로 태어났다면 게리와 마이클의 운명은 어땠을까.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사랑받는 막내로 태어난 마이클이 아버지와 척을 지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어도 곧은 길을 갔을지 감히 상상해본다. 방대하고 은밀한 집안의 역사를 냉정하게 먼발치서 바라본 이 기록은 가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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