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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Sep 21. 2021

음악 듣기의 폐해

음악 듣는 습관은 아이팟을 처음 접한 초등학생 때 생겼다. 어정쩡한 청록 케이스를 낀 아이팟이 내가 기억하는 첫 MP3다. 무거운 핑크색 캐리어를 끌고 대치동 거리를 활보하던 ‘대치동 키즈’에게 아이팟은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당시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써니힐의 ‘Goodbye to romance’는 20대가 된 지금도 듣는 명곡이다.


대충 요렇게 생긴 애ㅋㅋ


대치동 키즈의 정점을 찍은 고3 때는 공부할 때도 음악을 듣게 된다. (지금은 이 습관을 고쳤다.) 고3이 된 겨울방학에 당시 유행하던 자습학원인 러셀에서 몰래 음악 듣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학원에 도착하면 아침 7시부터 국어 과목을 공부하고 오전 10시쯤부터 수학을 공부했다. 양심상 국어 공부를 할 땐 음악을 안 들었다. 수학 공부를 할 때쯤이면 벌써 공부를 시작한 지 3시간 지났기 때문에 몸이 근질거린다. 나가고 싶어 어찌할 바 모르는 몸을 음악으로 눌러줬다. 그 당시엔 스탠딩에그 노래에 빠져있었다. ‘오래된 노래’, ‘시간이 달라서’, ‘햇살이 아파’ 등 반복재생하며 들었다. 감독하는 선생님이 지금 음악 듣냐고 의심할 땐 ‘인강 듣는다’라는 뻔한 거짓말을 해가며 들었다. 지금 다시 들으니 몇 개는 낯간지러워서 못 듣겠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뭐든 좋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스탠딩에그가 유명해진 노랜데 이건 아직까지 들어도 좋다. 대중 픽은 다 이유가 있다,,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교 시험 기간에도 음악을 들었다. 올해 1학기에 휴학하고 한 일은 음악 들으며 할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일할 때 음악 듣는 습관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이동할 일이 많았다. 얼굴도 모르는 취재원을 찾으러 서울에서 인천을 가거나, 취재원 대신 법원 행정 업무를 보러 분당을 가는 경우다. 싸가지 없는 법원 공무원을 처음 마주하고 지하철을 탈 땐 샤이니의 ‘Don’t call me‘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동 시간에 음악 듣는 건 나만의 특이한 습관은 아니다. 오죽하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학 또는 통근하는 사람에게 에어팟이 필수일까. 하지만 이제 이동 시간에 자연스레 멜론 앱을 켜는 습관을 과감히 없애려 한다. 이를 마음 먹은 날도 아마 평소처럼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있었을 거다. 예빛 노래에서 백예린 최신 앨범으로 갈아타려는 그 무렵이었다. 문득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지겨웠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노래도 몇십번 반복해 듣고 나면 질린다. 이동시간에 듣는 음악은 그리 세심하게 고르지 않는다. 멜론 플레이리스트 맨 위에 있는 곡부터 들을 뿐이다. 익숙해진 노래는 킬링타임용으로 쓰인다.


한번 실험해봤다. 과연 음악 없이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는 게 생각만큼 지겨울까.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 지하철만 타면 두 눈이 천장을 향했다. (물론 그 시간에 SNS를 하거나 유튜브를 볼 수도 있지만 음악 듣는 행위처럼 이 역시 지겨워진다.) 천장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잊고 있었던 할 일이 점점 떠오른다. 날 잘 아는 사람은 의아해할 수 있지만 사실 내 정신세계는 생각보다 산만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당장 떠오르기보단 한 박자 늦게 생각난다. 이동 중에 음악을 안 들으니 생각 정리가 잘 된다. 가령 추석 전엔 추석 연휴에 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미팅하러 갈 땐 해야 할 말을 집중해서 정리할 수도 있다.


여전히 음악을 들으며 이동하는 게 좋다. 이어폰을 꺼낼까 속으로 열댓번 고민한다. 오늘도 집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백예린 노래를 들었다. 버스에 타서도 앨범 마지막 곡인 '산책'까지 들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간 버스에 타서 책을 읽기로 한 계획이 무색해질 것 같아 이어폰을 가방에 넣었다. 앞으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멜론 앱과 멀어질 예정이다.


그래도 이번 신곡은 여전히 좋다 ღ˘⌣˘ღ  스밍 더 못 돌려줘서 미안해 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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