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영 Jan 27. 2022

진정한 어른은 무엇일까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접어두었던 책날개를 8개월 만에 다시 펼쳤다. 중반부 전까지 읽었으나 완주하지 못한 책이었다. 문득 집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책을 추천해준 선배와 친구 모두 반전이 있다며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때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결말이 불현듯 궁금해졌다. 8개월 만에 책을 펼쳤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관계, 사건과 소설의 분위기 등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참고로 난 일주일 전에 연재된 웹툰 내용을 기억 못할 만큼 스토리에 대한 기억력이 구리다. 그럼에도 난독증이 있었던 주인공 동구, 동구의 여동생인 영리한 영주, 동구가 사모했던 박 선생님, 견원지간이 차라리 나을 것 같은 동구의 어머니와 친할머니, 가부장적이었던 동구의 아버지까지…. 어린 동구의 시점으로 쓰인 이 소설은 다시 내 입꼬리를 올려주고 마지막엔 존경심을 여운으로 안겨주었다.


동구의 집에선 말다툼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동구는 늘 며느리의 트집을 잡는 할머니와 이를 방관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난독증이 있는 본인과 달리 귀염성 있고 영리한 동생은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예쁨을 받는다. 동구는 어른들의 눈칫를 보기 바쁘다. 이런 환경에서 소설 속 ‘정원’은 집에 바람 잘 날 없던 동구에게 유일한 쉼터였다. 누구에게나 그런 쉼터가 있듯, 동구에겐 정원이 그랬다. 겨울에도 잎이 풍성했던 여름날의 풍경을 상상하고 낙엽 내음을 맡으며 자연의 품에서 위로를 받았다. 


상처가 많은 가족이었다. 서로 생채기를 내지만 동구의 말처럼 무엇이 문제였는지 얘기해본 적이 없다. 그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받은 상처의 근원을 유일하게 들여다보고 이를 포용하려 했다. 어쩌면 동구는 이미 자신이 그토록 되길 바랐던 어른이 된 게 아닐까. 세상엔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많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것과 현실에서 어른이 되는 건 천지 차이다. 20살 이후, ‘성인’이란 딱지가 붙자 어떤 게 어른처럼 행동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다. 그래도 어른으로서 한 단계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한 칸 늘어날 때와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난 어른으로서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동구는 이미 어른이다. 동구는 스스로 경험한 적도 없지만 왜 할머니가 엄마에게 못되게 구는지 할머니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했다. 가족들이 가진 생채기를 아물게 해주려고 할머니를 포용하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희생한다. 선생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사랑은 책 읽는 내내 웃음 짓게 했지만,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그 마음이 귀중해 보였다. 


 <나의 아저씨> OST로 나온 ‘어른’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이 노래에서 어른은 현실의 짐을 지고 가다 자신 자신을 잃어버렸다. 어른이 되려면 자신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그래야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폭이 생기기 때문이다. 모두 알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렵다. 동구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


남겨놓고 싶은 표현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가요 프로그램에 정신을 팔고 있는 영주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서 당신 얼굴 쪽으로 돌리고 웃으며 눈을 맞추었다. 손녀가 마음에 들어 죽겠다는 듯한 그 표정으로 봐서는 영주의 얼굴이 '베린' 얼굴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베린' 아이는 나란 말인가? - pg177

수십 억 년의 나이를 먹는 동안 한 번도 누군가를 놓쳐본 적이 없는 늙은 지구였지만, 선생님의 가벼운 발걸음 앞에서는 갑자기 그 집요한 중력도 기운을 놓고 마는 모양이었다. 지구가 결국 선생님을 붙들기를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리면 선생님은 미련 없이 날아가버릴 것이다. - pg254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직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 pg305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 pg350


작가의 이전글 정신 못 차린 로준생의 한달살기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