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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영 Jan 23. 2022

정신 못 차린 로준생의 한달살기 생활

강원도 고성 입성 1일 차

내일이 너무 기대되어 잠 못 이룬 적 있으신가요?


제겐 이틀 전 밤이 꼭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틀 뒤 잠시 서울을 떠나 있을 생각에 설레어 뜬 눈으로 2시간을 누워있었습니다. 술 마시거나 전날 밤을 새우지 않은 이상 스마트폰 없인 잠들지 못했는데, 그날은 제가 꿈꿔왔던 한 달 살기 생활을 상상하기 바빴습니다. 이틀 뒤면 강원도 고성으로 혼자 내려가 자유롭게 한 달 동안 살 수 있다니! 사실 혼자 강원도 고성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의아한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요즘은 제주도 많이 가던데, 웬 고성?"

"왜 혼자 가세요? 심심하겠다."


최근 다니기 시작한 보컬 학원에 계신 선생님들부터 미용실 디자이너 쌤까지. 들뜬 마음에 한 달 살기 계획을 하도 떠벌리고 다녔더니 주변인들 중에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멋있다는(?) 특이한 반응도 있었지만 의아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왜 한국의 대표 휴양지인 제주도 대신 군사 지역으로 알려진 고성을 골랐냐고요?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부모님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제주도는 너무 멀어 걱정된다며 그나마 가까운 강원도로 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보수적인 부모님께서 혼자 한 달 살기 하는 걸 허락해주신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전 그 제안을 덥석 물었습니다.


고성에서 혼자 뭘 할 거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둘 중 하나로 답합니다. 물어본 사람이랑 별로 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다', 친하면 '책 읽으면서 공부할 거다'라고 답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깍쟁이여서 사람을 가려 답한 게 아닙니다. 고성까지 가서 공부한다고 하면 또라이 취급 하진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에 둘러댄 답변입니다.


사실 한 달 살기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공부이긴 합니다. 제목에서 이미 파악하셨겠지만 전 흔히 말하는 '로준생'(로스쿨 입시 준비생)입니다. 사실 로준생이 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법 세계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죠. 다소 늦게 법조인을 꿈꾸게 되어 남들보다 느려도 제 속도에 맞춰 입시 준비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이미 올해 있을 리트 시험(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법학적성시험)에 대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졸업 전까지 들어야 할 학점도 많고 독해력이 떨어져 다른 준비생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 고요한 바닷가 마을에서, 원 없이 책을 읽으며 부족한 걸 채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계획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다시 학점을 계산해보니 졸업 전 들어야 할 수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전에 받은 로스쿨 입시 상담에선 한 해라도 빨리 로스쿨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고 권유했습니다. 고민 끝에 올해 로스쿨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다른 준비생들이 기출문제를 분석하며 공부하고 있을 겨울방학에, 전 태평하게 고성에 있게 되는 겁니다.                  


'힐링'하며 지내기로 다짐했던 한 달 살기 생활이 생각보다 바빠질 것 같습니다. 부랴부랴 13년 치 리트 기출문제를 뽑고 토익 단어장을 사다 보니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바다를 보며 내가 읽고 싶은 책도 읽으며 시험공부를 하면 집중력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험생활과 힐링, 그 어딘가에 있는 요상한 한 달 살기가 되겠지만, 이틀 전 침대에서 상상했던 만큼 가슴 뛰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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