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파란 Aug 12. 2023

생애 처음 억대 대출을 받다

'꿈의 집'에 무사히 이사 갈 수 있을까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의 빼곡한 나무와 흔치 않은 박공 천장의 거실


“다음에는 꼭 창밖에 나무가 보이는 집에서 살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던 내게 사진 속 그 집은

 그야말로 ‘꿈의 집’이었다.     




이 집을 처음 본 건 작년이다. 큰아이 중학교 입학에 맞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예정이었지만, 전학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는 둘째 아이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계속 살자고 마음을 먹고 나서 네이버 부동산 매물을 보는 게 잠들기 전 루틴이 됐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자마자 찌릿, 살면서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한 적은 없었는데 세상에 집을 보고 ‘금사빠’가 될 줄이야.


하지만 집값은 언감생심, 거들떠볼 수도 없을 만큼, ‘못 오를 나무’였다. 습관처럼 사진만 들여다봤고, 그렇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일이 지난 어느 날 처음 봤던 매매가에서 조금 내려간 금액이 아닌가. 역시 ‘못 오를 나무’ 인건 매한가지였지만, 공연히 가슴이 두근댔다. 가끔은 운동삼아라는 명목으로 부러 거기까지 가서 잠깐이나마 외관을 쳐다보고 올 정도로 난 이 집과 제대로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또 수일 후 가격은 더 내려갔다. 아마도 집주인에게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했지만 그 사연을 알 길은 없고 그저 여전히 내 가슴은 쿵쾅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쁜 옷 한 벌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집을, 그것도 달랑 사진으로 보면서 혼자 가슴 뛰며 설레었다는 게 웃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꿈의 집’이 부동산 매물에서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아~ 결국 누군가가 샀구나, 원래 내 것도 아니었으면서 뺏겼다는 생각에 분하고 원통했다. 이 또한 무서운 집착 비슷한 증세였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4월이었다. 지금은 각각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한때 같은 아파트 주민이었던 세 명의 아줌마가 모여있는 단톡방에 내 사랑 ‘그 집’에 관한 제보가 떴다. 물건만 팔고 사는 줄 알았던 <당근>에서 집도 팔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당근> 부동산 매물에 ‘그 집’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더 놀라웠다.


잠시 잊었던 첫사랑의 소식을 들은 것 마냥 두근대는 마음으로 링크를 열었다. 세상에나, 믿을 수 없는 금액을 달고  게시되어 있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거실 사진과 함께 말이다. 자릿수가 바뀌었을 정도로 파격적인 매매가이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집 형편으로는 덜컥 달려들 수 없는 가격임은 분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홀린 듯이 ‘채팅하기’를 눌렀고 당장 내일이라도 집을 보러 갈 수 있음을 알렸다. 그 집을 산다기보다는 나의 ‘꿈의 집’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맞춰 집 앞으로 갔다. 그런데 나의 ‘꿈의 집’을 보러 온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딸이 함께 온 가족이 또 있었다. 매매를 일임받았다는 한 남자의 소개로 드디어 집 안으로 입성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사진 속 앵글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냥 구경만 하자는 마음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난 이 집에서 살고 말 거야’라는 허황된 욕심이 용솟음쳤다.      



그날의 난 귀신에 씌었던 게 분명하다. 함께 집을 둘러본 가족이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자 홈쇼핑의 매진 알림에 초조해진 것처럼 안달이 났다. 회의 중이라 통화도 길게 할 수 없는 남편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낯선 사람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일러주며 일단 수백만 원을 보내라고 독촉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마이너스 통장 속 돈을 이체했고, 그렇게 그 집과의 인연인지 악연이지 모를 질긴 관계가 시작됐다.      




그리고 오늘, 내 명의로 억대 대출을 받았다. 받을 수밖에 없었고 받아야만 했다. 말로만 듣던, '선매수 후매도'라는 잔인한 선택의 결과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금리에, 바닥이 어딘지 모르고 꼬꾸라지던 집값-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놓인 올해, 내가 벌여놓은 일이다.


지난 4개월은 우리 가족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이었고, 일을 저지른 장본인인 나는 밥맛은 물론 삶의 의지도 잃어버린 악몽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금방 팔릴 줄 알았던 지금의 우리 집은 여전히 계약서조차 쓰지 못한 처지이고, ‘꿈의 집’이라 생각했던 그 집에 저당 잡힌 계약금과 중도금을 허공에 날리지 않기 위해서, 또 잔금을 치르기 위해서는 남편 명의의 대출은 물론 내 명의의 대출도 받아야 했다. 그것도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치로. 채무자가 되어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심사를 받고 승인을 얻는 일련의 과정은 심리적 피로도가 꽤나 높았다. 하긴 돈 빌리는 게 그리 쉬울리가 있나. 어찌어찌 무사히 억대에 달하는 돈을 빌린다해도 지금 깔고 앉아있는 집이 팔리지 않는다면 이걸로 해결될리 없다. 눈앞이 캄캄하다, 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분명하다.



과연 지금 집은 팔리긴 할까. 그렇다면 언제.

‘꿈의 집’이라 여겼던 그 집에 우리 가족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난 무슨 짓을 벌인 건가.


<나의 이사 분투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