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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Aug 12. 2023

열두 번째 손님

집 좀 사주세요. 싸게 드릴게요.


오늘은 젊은 부부가 다녀갔다. 우리 집을 보러 온 열두 번째 손님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평수 대비, 생각보다 넓고 깨끗하다며 약간의 환호를 섞어 좋아했다. 그동안 집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이라 동요하지 않는다. 처음 한두 팀이 왔을 때만 해도 작은 리액션도 소중했다.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반응에 당장이라도 집이 팔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남편에게 톡으로 실시간 보고를 했다. 그러다 아무 소식이 없으면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의욕을 잃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했다 널뛰기하는 초보의 태도는 내던진 지 오래다. 



자녀분들은 어느 학교를 다니나요?     

아직 아이가 없다했지만, 미래의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집 주변에는 좋은 학교가 꽤 많다. 앞 베란다 너머에 서울과학고가 있고, 뒷 베란다 너머에 서울국제고등학교가 있으며 도보권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모두 있다. 자율형 사립고는 물론 성균관대학교, 게다가 서울대학교 의대도 있으니 말이다. 엄밀히 말해 좋은 학교는 많지만,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진짜’ 좋은 학교가 많다는 거다. 깔깔대며 학교 얘기를 한바탕 하고, 다음으로 누수나 방음 등 집의 하자에 관한 사항을 매의 눈으로 관찰한다. 집의 청소 상태와 그간 관리는 얼마나 잘했는지, 철두철미한 모습에 마치 나의 살림력을 확인받는 것 같아 몹시 조마조마했다. 


2시간 같은 20여 분이 이어지다 그들은 환한 미소를 끝까지 유지한 채 자리를 떴다.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과연 연락이 올까? 보통 하루 이틀 안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집이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나와 같은 처지의 남편은 “어때?” “집 살 거 같아?”류의 질문 폭탄을 던졌을 텐데, 그도 이제 이골이 났는지 무소식이다.      


우리를 구제해 줄 은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5월 31일. 

첫 번째 손님은 중국 국적의 부부였다.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초등생 아들 두 명이 있단다. 역시 학교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엄마였고 베란다 너머 서울과학고 건물을 한참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6월 9일.

공교롭게도 이번엔 딩크족 부부였다. 집을 구하는 데 있어 큰 변수라 할 수 있는 아이들과 관련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집을 보는 태도도 쿨했다. 그리고 쿨하게 떠났다.     


6월 15일.

서울대학교 병원 여의사로 혼자 살 예정이라고 했다. 보러 오시는 분의 가족 수가 점점 줄어 독신가구라고 하니 고려할 게 적겠구나, 내심 기대를 했으나 부모님이라는 복병을 생각지 못했다. 시세차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모님의 반대로 굿바이     


6월 17일.

이번에도 여자분 혼자였다.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독립할 집을 찾는 케이스로 아무래도 친숙한 학교 근처를 구하고 싶어 왔으나, 결론은 결혼할 남자친구가 대단지 아파트를 원한단다.      


7월 7일.

오랜만에 온 손님이다. 역시 여자 혼자다. 악기를 하는 분으로 방음벽 공사 얘기를 한참 했지만, 역시 단순 구경의 느낌이 강력히 풍겼다. 


이쯤 되니 유독 혼자인 분들이 우리 집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동산 사장님들과 머리를 맞댄 후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내 좁은 집만 보며 가진 답답함을 살짝 넓은 집을 보며 눈의 환기,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던 것. 이용당했다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7월 8일.

연속 이틀째다. 이번에는 성균관대학교 교직원 부부다. 직주근접에 최적화 된 집이라며 내내 흡족해했고 집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가구 배치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고, 보통 학기가 끝나야 이사할 수 있는 여유가 되기 때문에 겨울에 이사 예정이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집에 왜 온 걸까. 허탈 그 잡채.     


7월 10일.

집 보러 오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건, 누가 올지 알 수 없는데서 오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누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손님에게 둘째 아이가 90도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나이가 지긋한 부부였는데 아이의 인사를 받은 직후부터 경직된 표정으로 집도 보는 둥 마는 둥 질문 하나 없이 휘리릭 가버리셨다. 


세상에나, 집 보러 오는 사람으로 아이 방과 후 선생님을 마주칠 확률이란.       



 

그 후로도 일주일에 한 팀 정도의 간격으로 다녀가셨다.

집을 내놓고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은 공을 쳤고, 두 달 반 가까운 기간 동안 열두 팀이 보고 갔다. 절반 이상에서 ‘구경하는 집’ 역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얼어붙은 현재 부동산 시장 속에서 선방했다 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패다.      



하루 이틀 전에 연락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당장 보러 온다는 전화에 폭포수 같은 땀을 쏟아내며 청소했던 일개미 같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너무 마음에 든다고 연락 주겠다고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감감무소식이었던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선명하다. 그 덕에 희망 고문을 겪었던 하얀 밤이 생생하다.      


누굴 탓하랴. 내가 저질러 놓은 진흙탕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가시밭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왜 그랬냐고

누군가는 말한다. 집은 그렇게 사는 거라고

남편은 말한다. 우리 어떡하냐고

난 말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을 살리는 간 기증도 했는데,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아닐거야.. 아니었으면... 

그런데 쫄리긴 한다...................   



#선매수후매도 의 처참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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