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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Sep 08. 2023

열에 아홉은 말했다 "넌 사기당한 거라고"

경매 나온 집을 샀다




어떻게 이런 집을 사셨어요?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살고 있는 집의 매도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맞닥뜨리고야 만 잔금 일 말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OO법률경매 사무실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매수인인 남편과 나, 매도인이 매도에 관한 일체를 위임한 법률경매회사 대표, 법무사 그리고 우리가 억대 대출을 받은 은행 측 법률사무소 사무장이다. 법률사무소 직원답지 않게 노란색 머리로 등장 순간부터 강렬한 첫인상을 뿜었던 사무장이 우리에게 건넨 질문이다. 언뜻 들으면 "어떻게 이렇게 좋은 집을 사셨어요?" 정도겠지만, 내막은 그게 아니다. "어떻게 이런 복잡한 집을 사셨어요?" 정도랄까.




나에겐 '꿈의 집'이었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불안한 집에 불과했다.

열에 아홉은 내게 말했다.

넌 분명 사기당한 거라고.


내가 홀리다시피 덜컥 계약부터 한 집은 알고 보니 경매에 나온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임의경매개시결정'상태이긴 했지만, 뒤늦게 떼어본 등기부등본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근저당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있었고, 앞서 있었던 근저당 설정과 취하가 반복되며 그어진 빨간줄이 빼곡했다. 지난 날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28년간 소유주가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본은 일곱장에 달했다. 어찌됐든 누가봐도 문제가 매우 많은 집이었다.


그 때문에 사려다 지레 겁먹어 포기하는 사람들이 이어졌고, 찔끔찔끔 가격이 내려 결국 나에게까지 기회가 온 거다.

내가 계약하기 불과 2개월 전, 그러니까 내가 계약한 건 4월 임의경매개시결정일은 2월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난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던 건지, 부동산 공부를 해 보겠다고 작년에 나름 책을 독파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공부는 단타로 끝났다) 적은 돈으로 몇억까지 불린다는 갭투자 관련 책은 물론이고 경매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다.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내 기억 속의 몇 안 되는 정보를 출력해 봤을 때 임의경매개시결정 후 실제 경매가 이루어지는 매각기일이 정해지기까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면 1년 가까이 걸린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겁이 없던 건지 집에 홀린 건지 매각기일이 잡히기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그전에 잔금을 치르면 괜찮을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릴 수 있었던 용기였다는 것도 잘 안다.


이런 날 보고 미쳤다고 했다. 걱정과 불안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열에 아홉을 제외한 열에 하나, 그러니까 날 믿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그나마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경매에 대해 일도 알지 못한다. 차라리 그래서 그랬던 건가. 그 역시 홀린 듯 내 결정에 따라 주었다. 물론 그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후딱 팔려 잔금을 치르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언제 팔릴지 기약 없이 시간은 흐를 뿐이다.




어찌 됐든 집 잘 사신 거예요


다행히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꿈의 집'은 무사히 우리 집이 됐다.

사십몇년 인생, 살아본 집 중 가장 넓은 집이다. 4남매에 할머니까지 같이 살았던 일곱 식구의 어릴 적 우리 가족이 살던 집보다 방이 하나 더 있고 거실과 주방은 대궐이다.

불안했지만 당시의 선택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스무평대 집이 십수억에 이르는 한강 아래 다른 세상의 집과는 비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에게는 여전히 높다란 벽처럼 느껴지는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태산 같은 이자가 매월 25일 우리의 목을 조여오겠지만, 바라고 바랐던 집에 산다면 모든 것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했다'던 윤여정 배우님이 말씀처럼 나 역시 매월 돈이 필요하니 인생을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스물여덟 살의 집을 우리 가족만의 집으로 바꿀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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