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숲 Jan 25. 2022

어떻게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키울 수가 있어?

아동언어심리발달센터 원장인 친구가 오히려 내게 물었다.




아침, 이제 막 4살이된 딸을 키우는 친구가 전화가 왔다. 출근을 해야 되는데 아이는 도망을 치고 꾀를 부리자, 마음이 급해진 친구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고. 와, 앞집 사람이 나 아동 폭력범인 줄 알겠어, 어린이집에 던져 놓고 왔어 하는데 절대 공감. 마음이 급할 때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만큼 화나는 일도 없다. 이 친구는 아동언어심리발달센터의 원장이다. 하물며 원장님도 이론과 실제 육아는 다르다고 웃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위로와 공감을 주는거 아닌가 생각했다. 전문가도 육아는 힘들다. 친구가 물었다.


‘어떻게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키울수가 있어?’


아이가 6살이 된 지금까지, 위험해서 멈춰야 해서 큰 소리를 낼 때 빼고는 정말 단 한 번도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소리 지른 적은 없다.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한 번도 없다. 내가 대단한 엄마고 아이가 유별나게 착하다기 보다, 서로의 기질이 잘 맞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아이는 떼부림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하는 일에 대부분 화가 안나는 편이고. 당연히 인간이니 부글부글 끓어 오를 때야 있지만 그럴 땐, 잠시 떨어져서 마음을 삭이면 된다. 아이는 일부러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몰라서, 서툴러서 미숙해서 궁금해서 하는 행동이고 그걸 지켜보고 바로 잡아주고 가르쳐 줘야 하는게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로는 화가 잘 나지 않는다.






어느 날, 카페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같은 아파트 다른 동, 열린 창문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무서운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통통한 초등학생 무렵의 아이를 유리창 모서리에 세워놓고 너무 무섭게 아이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많은 가족이 싸우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가정폭력, 가정내 아동폭력이 늘었다는 기사도 보았다. 물론 그런 엄마는 아니었겠지만, 아이에게 악을 쓰는 그 광경도 내 눈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당연히 당하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이 공포스럽겠지). 그 소리를 가만 듣고 있다가 애를 때리기라도 한다면 경비실 통해서 연락을 하든, 경찰에 신고를 하든 할 생각이었다.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법적으로 내 자식을 때려서도 안된다고 한다. 어느 부분으로는 공감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과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게 하물며 부모 자식 사이더라도 그렇다. 인간은 내가 가할 물리적 힘을 객관화 시킬 수 없고, 왜 폭력이 동반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가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아이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주다가 습관적으로 손이 올라가는 많은 부모를 만난다. 아이는 움찔하면서도 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폭력으로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모든 부모가 이걸 전제로 자식을 키우려고 노력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아파트 밖으로 보이는 엄마는 여전히 악을 쓰고 애를 코너에 몰아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아이는 웅얼웅얼 엄마에게 대들고 있었다. 자식을 때리는 엄마 같지는 않아서 그래 잘못을 했으면 많이 혼나야지, 하고 내 갈 길을 가긴 했다.






아 이 대목에서 나는 한 번도 부모에게 맞아 보지 않았냐, 당연히 아니다. 우리 엄마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와 내 남동생을 세살때부터 개패듯 패서 키웠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곤 했다.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말을 들어 처먹질 않고, 별나게 싸우던 연년생 남매였던지라 엄마도 딱히 방법이 없었을거다. 요즘처럼 육아에 대한 노하우를 누가 알려주던 때도 아니고, 금쪽같은 내새끼 처럼 대단한육아 프로그램이 있지도 않았고, 모두가 자식은 그렇게 패서 키울 때기도 했다. 쌍둥이보다 힘들다는 연년생 남매 육아를 독박으로 해냈으니 엄마의 힘듦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엄마에게 닮지 않고 싶은 면을 꼽으라면 당연히 여기던 매와 우리에게 소리지르던 것. 내 자식을 키우면서 앞으로도 절대 이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튼 나의 경우, 아이가 위험한 것만 아니면 대부분의 행동을 한 번쯤은 경험하게 해주는 편인데, 아이가 번개맨 장비를 착용한 채 자는 사진을 친한 언니가 보더니 ‘어우 그 꼴 어떻게 봐? 나는 울려서라도 다 벗겨’ 라고 했다. 당연히 관점의 차이가 있고 육아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안다. 나는 아이가 위험하지만 않으면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은 충분히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자기가 동경하는 히어로의 모습으로 밥도 먹고 놀아도 보고,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어른들의 엄지척을 받는 일을 다 커서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번개맨 분장을 한채로 목욕을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안된다고 하지만, 잘 때 까지도 히어로의 모습인게 뭐 어떤가. 잠들면 벗겨 주면 되고 한 번 충족이 되고 나면 아이는 그런 행동을 또 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종이 박스로 만든 자동차가 너무 좋았던 아이는 차 안에서 자겠다고 했고, 정말 혼자 침대 위에 자동차 박스를 올려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잠들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동차 박스를 치우자 그 속에서 히어로라도 된 마냥 기분좋게 잠든 아이 얼굴을 보는데, 이 순간도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 긴 인생, 아이는 살면서 어쩌면 단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중이다. 부모인 우리가 그걸 막으면 어떤 재미와 추억을 안고 살아가겠는가


식탁에서도 너무 예절을 강요하진 않았다. 그저 식탁에 앉아 엄마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고 즐겁기를 바랬다. 이유식을 시작하곤 하루 세 번 목욕을 씻겼다. 조금 귀찮아도 직접 수저와 밥그릇을 쥐어주고 음식을 발라도 먹고 떨어트려도 보고 먹어도 보고, 그렇게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두었다. 주변 친구들이 아이가 어떻게 밥을 그렇게 잘 먹냐, 어떻게 식탁 의자에 얌전히 있냐고 물을 때마다 이유식 다 직접 먹여주지? 치우기 힘들어서? 물어보면 하나같이 그렇다고 했다. 니가 씻기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그냥 아이가 마음껏 즐기게 둬 보라고, 나의 조언은 늘 그랬다. 엄마가 힘들어질수록 아이는 재미있다. 체험할 수 있는게 많아진다. 매일 이케아 유아 체어를 아이와 같이 씻으면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몸이 조금 편하자고 아이에게 밥을 다 먹여주지 않았다. 즐겁게 모든 걸 직접체험하길 바랬다. 그랬던 덕분인지, 원래 먹성이 좋은건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식탁에 스스로 와서 앉고 가족과 식사하는 시간을 즐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무서운 태도로 밥상에 앉아 얌전히 밥만 먹기를 바라진 않았다. 이것 역시 모두의 육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뭐가 맞고 그르다 얘기할 순 없지만, 부모의 무서운 얼굴을 자주 마주한 식탁이 아이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리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유롭게 밥 먹는 시간을 즐기게 뒀다고 해서 아이 밥 먹는 태도가 엉망이지도 않다. 누구보다 오래 앉아 스스로 자기 몫의 식사를 오랜 시간 즐기는 아이로 자랐고, 어린이집 유치원 할 것 없이 가장 밥 잘 먹는 아이로 자랐다. 밥 먹자고 하면 자기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요즘은 본인 몫의 수저를 직접 챙기기도 한다. 당연히 기본적인 밥상 머리 예의는 어느때고 꼭 필요하니, 마냥 방치는 마시길. 








여러 가족과 캠핑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 사실 그동안 아이에게 딱히 화가 많이 나지 않은 이유는 아이의 몫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 아들도 다른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엄청 혼나면서 컸겠다, 싶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부모마다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싫어하는 포인트, 화내는 부분이 다른데 아이와 우리는 그저 기질이 잘 맞았을 뿐이었다. 아이 때문에 나의 분노 버튼 눌릴 일이 적었을 뿐이고 떼를 자주 이유없이 부리거나 드러눕거나 했더라면 아마 나도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자식을 키울 수 없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바로 남편인데

안그래도 가정적인 성향에 나 혼자 뭘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성미의 남자를 만났는데, 그 덕분에 육아 휴직을 1년 써주고 조금 출근하나 했더니 코로나가 터져서 2년이 넘도록 재택 중이다. 육아는 체력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없으면 다정함은 나올 구멍이 없다. 모든 시간 남편과 함께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니 쌓일만한 피로나 화가 없는 편인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에게 인자로우려면 하루 한 시간 정도 걷거나 운동을 하고, 잠을 푹 자야 한다는게 내 지론이다.



가끔 (내 기준에) 혼나지 않아도 될 일로 혼나는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생각한다.

모든 엄마나 아빠들이 당연히 아이니까 할 수 있는 사소로운 실수에 대해서 조금만 너그러웠으면, 인생에 한 번 뿐일 경험을 막아서지 않았으면 하고. 그리고 부부가 서로를 돕고 사랑해야, 아이에게 나눠줄 사랑이 생긴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육아는 절대 어느 한 사람이 오롯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대하고 매일을 기적처럼 여기기를 바래본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두려움없이 사랑과 행복을 넘치도록 받았으면 좋겠다,는 뜬구름 같은 꿈을 꿔 보는 아침이다.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식을 키웁시다, 우리

 








작가의 이전글 장난감 쏟는 소리가 들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