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맨 옷은 도대체 누가 입히나 했더니
아이를 낳고 엄마에게 배운 것, 육아는 절대 장담하지 말라
금요일 저녁 엄마와 아이가 영상통화를 했다. 번개맨 사랑이 점점 더 강해져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번개맨 망토를 하고 다니는 아들이 요즘은 번개맨 옷까지 입고 싶어하는데, 마침 오늘이 어린이집에도 시퍼런 번개맨 옷을 입고 갔던 날이었다.
영상통화를 하던 엄마가 깔깔 웃으면서 그랬다. 엄마가 자식 키우는 일은 뭐든, 장담하지 말라고 했지?
응 무슨 말이야?
번개맨 옷은 절대 안 입힌다매~
그랬다.
나는 절대 캐릭터 옷은 안 사 입힐거고,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주는 엄마도 절대 되지 않겠다고 했었다.
지금의 나는(우리는) 아들이 좋다고 하면 일말의 고민없이 옷을 입혀 어린이 집에 보내기 까지 한다. 여전히 장난감을 잘 사주진 않지만 : P
거봐라, 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 머리에 남아
엄마 생각을, 그리고 엄마가 된 나를 떠 올렸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엄마에게 배운 것들,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나만 맞고, 내가 아는게 세상 전부인양 살아 온 안하무인 이라 나 혼자서 오롯이 육아를 해냈더라면 아이에게도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가 있어서,
엄마 품에 있어서,
모든 게 편하고 좋았으나 제일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갖 루틴과 규칙 세우길 좋아하고 독단적인 내 성향을 육아에 적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시간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친정에 있으면서 나만의 규칙을 세울라치면 모든 게 여의치 않았다.
애착육아파 엄마 곁에서, 수면교육이 유행처럼 돌고있는 요즘의 육아법에서 한발 물러섰고
많이 안아주고 업어주고 대화해주고
내 몸이 아이의 침대가 되고 밥상이 되고 장난감이 되어 살았다
나 홀로 있었더라면 수면교육 한답시고 아이를 울리고 또 울렸을거다.
당연히 해야하는 거라고 믿었을테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 힘들기도 했다.
시간표를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수면교육을 해야할 것 같은데, 이 시기에는 이유식을 이렇게 이렇게 꼭 먹이라던데, 이럴 땐 이래야 된다던데
인터넷 속 수많은 육아방법을 전해 들을 때 마다 뭐 그런거에다 그렇게 이름을 다 붙인다니, 하고 엄마는 웃기만 했다.
모유수유를 하는 애들이 특히 비타민D가 부족하다던데,, 검색해서 비싸고 좋은 걸 사 먹여볼까? 할라치면,
엄마는 이미 아이를 업고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을 보고 오셨다.
엄마, 이런 저런 음식재료를 쥐어주고 오감놀이를 하면 좋대, 하면
아니 요리하다 보면, 그냥 당연히 옆에 있는 애한테 재료 하나씩 쥐어주고 놀게 하는 건데 요즘 사람들은 이름도 참 잘 짓는다, 했다.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엄마들이 당연히 하던 모든 일들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꼭 해야만 하는 규칙 같은 것으로 인터넷과 책들은, 신입 엄마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리고 내 걱정과는 반대로, 결국 엄마가 말한대로
아이는 자기 몸이 시키는 시간표 대로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싸고 놀았다.
나는 원래 텔레비전 없이 살았었기에 잠들기 전까지 TV를 켜 놓는 엄마 곁에서 처음에는 시끄럽다, 아이가 보면 안된다 난리를 쳤으나 나중에는 엄마가 보는 아침, 저녁 드라마를 함께 보기도 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서는 텔레비젼이 없는게 적응이 안되는 사태 발생...
그런 나와 엄마 곁에서, 아이는 텔레비젼을 보기도 하고 나서부터 소음에 익숙했다. 아이를 바보로 만든다던 텔레비젼 곁에서 아이는 5개월에 엄마, 안아를 말했고 7개월에는 엄마, 아빠, 안되 등의 단어를 말했다. 그 밖의 다양한 말들을 하나씩 아주 이른 시기에 말하기 시작했고 언어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친구가 몇 개월이나 발달이 빠르다고 매번 체크를 하며 놀라워 하는 아이로 자랐다. 지금도 말도 안 되게 빠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빠른 편에 속한다. 결론은 너무 많은 육아 규칙으로 아이와 엄마를 옭아 매진 않았으면 하는 것
엄마가 아니었다면 누가 나에게
나를 내려 놓는 방법을 알려주었을까
누가 아이를 힘들게 하는 육아법 말고
니 몸이 조금 힘들고 말아라, 하는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누가 나보다
본인이 힘들기를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엄마 말씀 듣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엄마의 말은 다 들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나는 결코 엄마에게 온순하거나 순종적인 딸이 아니었다.
친정에서 시끌벅적하게 가족들 품에서 키운 덕에 주변이 좀 소란해도 잘 놀다가 잠들고 낯가림이 적은 그런 아이가 된 것 같다
물론 성향도 있겠지만, 자라 온 환경은 아무래도 무시를 못 하니
지나고 보니, 엄마 말씀이 다 맞았다
부족한 내가 홀로 엄마가 되었더라면 나는 절대 소호를 지금처럼 밝고 잘 웃고 유대가 탄탄한 아이로는 키우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처럼 나를 많이 내려 놓는게
아이를 낳고도 한동안은 너무 힘들었으니까
신생아 시절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소호 궁뎅이를 때리면서 내 딸 잠도 못 자게 하네! 하던 엄마가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엄마한테 가서 한 참을 부비고 엄마 밥 먹고 그렇게 힘을 내서 와야 하는데 엄마를 못 본지 두 달 정도 되어가니 이렇다.
빨리 엄마 아빠 보러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