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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Jan 11. 2022

연애 6년동안 싸운 역사가 없는데 말입니다.

육아 앞에 예외없는 우리


조금 번거롭고 귀찮아도 카메라를 꺼내 (휴대폰이든 카메라든) 사진을 찍어 놓으면 그 순간이 박제된다. 아이의 예쁜 순간, 미운 표정도 사고친 순간도 모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는다.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으니 찍고 쓴다.

연애할 땐 6년간 거의 싸운 적이 없던 우리 부부도 아이가 태어나고 일을 같이하고 코로나로 1년 8개월째 매일 모든 순간을 붙어있기 시작하자 여지 없이 큰 싸움이 몇 번 있었다. 어머, 너희도 부부싸움을 해? 하는 소리에 아니, 우리는 연애때도 안 싸웠고 지금도 안 싸워, 말하고 싶지만 육아에는 어떤 것도 예외가 없다. 우리도 싸운다, 작은 싸움은 자주, 일년에 한 두번은 큰 싸움까지.

일도 해야 되고 애도 봐야 되는데 귀찮은 세 끼 끼니도 차려야 된다. 집은 왜 또 큰 집을 사놔서 청소랑 정리도 매일 해야되고 세탁기는 빨래한 다음에 왜 건조기에 전달을 못하는걸까, 건조기는 왜 빨래를 개켜주지는 못할까, 냉장고는 왜 식재료가 저절로 채워지지 않고 밥통에 쌀 씻어 담는건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되며 도대체가 달 나라도 가는데 집안 가전은 발전이 왜 이렇게 더딜까,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거의 매일 한다. 늘어난 강아지 식솔이 치는 사고에, 오줌똥에 매일 산책도 시켜줘야 한다. 아내 노릇도, 엄마 노릇도 나같이 이기적인 인간에는 종종, 아니 자주 버겁다. 힘들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라 게임기만 있으면 한 달 동안 집 밖에 안 나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집돌이에,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면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 하면서 깔깔 웃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고삐리 같은 남편이라고 어디 다른가. 이 남자도 정신차려보니 조모임 하던 애랑 결혼하고 있고, 아이 아빠가 되어 있을 뿐인데. 근데도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학교 같이 다녀, 회사 같이 다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도 매일 붙어있는 와이프 뭐 예쁘다고 늘 잘해 주고 싶어하고, 집은 늘 직접 쓸고 닦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다 집 잘 꾸미는 대외적 이미지까지 얻어 인생이 늘 피곤하다. 그걸 이용해 먹는 와이프 때문에 항상 다양한 이벤트 속에 살고 있고

어찌보면 미성숙하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두 인간이 만나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에 늘 쫓기듯 산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모자란 잠에 늘 바쁜 스케쥴에, 에너지 닳지 않는 천방지축 5세 남아와 하루를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화는 그나마 인간다운 대화가 가능한 서로에게 향하게 되는데 그마저도 남편은 약간의 짜증이나 화에도 심각할 정도로 상처 받는 스타일이라 우리의 싸움은 늘


남 :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여 :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또 이래?

하는 식의 일반적인 남여가 뒤바뀐 싸움의 레파토리가 일상이다.


불과 며칠전에 서로에게 심각한 데미지를 입힐 정도로 큰 싸움을 했는데, 싸움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이후가 기가 막히다. 보통 싸우고 나면 2차전이 있던지, 삐지고 울고 불고 해야 되는데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할 시간도 없이 아침에 눈을 뜨니 가위를 갖고 놀다 손가락을 벤 아이와 마주했다.., 아이 피를 본 우리 부부는 번갈아 앞이 새카매지고 숨 쉬기가 어렵고 온 몸에 땀 범벅에 속에서는 구토가 일어 아이 손가락을 꼭 쥐고 지혈하다 말고 번갈아 오바이트를 하러 갔다(진짜 나오진 않고 구역질만). 지난 번 아이가 다쳤을 때 봤던 피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겠지만, 또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피가 펑펑 나는 아이 곁에서 (정작 아이는 울음을 그쳤는데) 부부 둘이 호흡곤란에 어지럼증에 구토라니. 서로를 보면서 웃기고 기가 막혔다. 손가락에 깁스만큼 큰 붕대를 말고도 씩씩하게 대답하면서 응급실에서 스파이더맨이라며 거미줄을 쏴대는 아이를 따라 다니고, 그 놈을 챙겨 집에와서 밥을 해 먹고 어지르는 집을 따라다니면서 정리하고 약 먹이고 번갈아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늘 보내는 날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낸 것이다.

서로에게 말도 안되는 데미지를 입힌 부부 싸움 다음 날이었는데!


우리는 아직 제대로 화해도 못 했고 삐져 있지도 못 하고 더 화를 내지도 못했는데,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안 살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아직 제일 소중한 우리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으로 밤 열두시에 손을 꼭 잡고 안고 누워, 새벽 두시가 다 되어 가도록 싸운 이유와 서운했던 점, 미안한 점을 서로에게 사과하고 또 했다. 그러지말자, 상처 주지 말자는 뻔한 다짐을 서로에게 하고 잠이 들었다.

이 육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서로를 지켜내고 있다. 매일 남편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둔다.


모든 부부의 위기는 아이가 어릴 때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꼭 온다, 우리 둘 뿐이던 때를 기억하자, 평온하게 서로를 사랑하기만 하던 때가 우리의 본 모습이다, 아이는 자라고 우리만 남는 시간이 또 온다, 그럼 그 때 다시 허겁지겁 하루를 살지 않아도 되고 우리의 모습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거다, 라는 말들. 아이를 키워낸 모든 어른들이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아이가 어릴 때, 가족이 매일 모여 살 부비고 살던 때를 꼽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매일이 버거워도 돌아보면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행복한 순간일거다, 하고.

실제로 우리는 매일 정말 많이 웃고 행복하다. 힘듦도 기쁨도 행복도, 이렇게 깊고 진할 수 있나 싶게 농염한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하여간 육아 앞에서 예외없이 후들거리는 육아 체질 1도 없이 애만 귀하고 예뻐 죽겠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이렇게 두서없이 블로그에 기록해 본다.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으면서 그래 우리 이렇게 정신없이 살았지, 그래도 애 키우면서 재미있고 웃기고 행복했지, 그렇게 웃고 또 서로를 안아줄 곱게 늙어있을 우리 모습을 그려 본다. 그래도 이번처럼 심하게 싸우는 건 안 하고 싶다, 남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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