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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Apr 15. 2023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피켓 들고 전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복잡한 출근길이나 전철역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피켓 들고

전도하시는 분들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뉠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전도에 

부정적 효과를 내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분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노상 전도를 반대하는 분들의 생각에는

복잡한 곳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억지로 듣게 만들고

전단지까지 손에 쥐어 준다면

요즘처럼 사은품을 쥐어줘도 

안 받는 세상에

과연 전도가 되겠는가 말씀합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은 

교회 다니는 분들 조차도 

꺼려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노상 전도를 찬성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그러한 분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과 용기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전도되겠어?’라든지

‘그렇게 한다고 교회가 부흥하겠어?‘ 하는 식의 생각은 

일의 결과만을 따지는 지나치게 실용주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일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제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약간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 

그것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비로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더구나 늦은 나이에 목사까지 된 사람인지라

신자였을 때와 비신자였을 때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에 

집은 부천에 있었고 

학교는 신촌 부근에 있어서

전철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통학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전철 1호선에는 전도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철 1호선은 서울 근교에서 

출퇴근 사람이 많이 이용하기에  

지옥철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2호선은 순환선이어서 

또한 언제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1호선과 2호선이 환승되는 

신도림역 같은 경우

하루 이용객이 전국 최다로 기록될 만큼

하루종일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꼭 출퇴근 시간만 되면 

그 복잡한 신도림역에


'예수천당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나타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미어터지는 전철 속에서 

모두들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숨 마저 참고 버티는 가운데


그분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립니다

좁은 전철 안을 비집고 다니며 

예수 믿으면 천국 갑니다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큰 소리로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쌍소리 섞인 욕이 

날아들기 일쑤입니다


저 또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왜 저렇게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이

힘들게 욕까지 먹으면서 

저런 일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제가

신앙을 가지게 된 후

한 번은 우연찮게 어느 잡지에서 

신도림역에서 매일같이 전도하는 

그분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도 궁금했던 터라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읽었는데


잡지 기사에서 기자가

왜 힘들게 남들 싫어하는 전도를 하느냐고 묻자


이분 말씀이


자신은 불치의 병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인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기적적으로 병이 완치가 되었답니다


너무나 감사했고

이제부터 살아가는 인생은 

덤으로 사는 

선물과도 같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남은 생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물어봤더니 

하나님은 전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보니 자신은 학력도 짧고 

별다른 재능도 없어서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고민 끝에 자신의 능력과 환경에서 유일하게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용기를 내어 버스에 올라 

모르는 승객들을 향해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전도하고 내려오는데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따라 내리며 하는 말이


자신은 사업도 망하고 삶이 너무 힘들어

한강 다리에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더랍니다


그 이후로 이 분은

용기를 얻게 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출퇴근 시간에 자신의 소리가 

듣기 싫은 소음에 불과하겠지만


그날 버스에서 만난 사람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된다고 생각하니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를 견딜 수 있더랍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인데

그에 비하면 

그깟 사람들이 겪는 한 순간의 짜증은 

별거 아니냐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 

저는 길거리에서 시끄럽게 

노상 전도하시는 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가끔 제 앞에서 노상 전도하시는 분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인터뷰 기사 이야기를 해주며

이해를 시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과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의 맥락 없는 전도는  

그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전도에 대한 열심히

출퇴근길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과 불쾌함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라든지 


혹은 


‘그런 전도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 

전도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노상 전도는 여건 상

복음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는 메시지 외에는

복음의 내용을 달리 전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앞 뒤 잘라 

맥락 없이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심각한 

신앙적 후유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뭐.. 모두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복음만 전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러한 생각은

암에 걸리면 병원에 안 가도 

기도원 가서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고쳐 주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별반 차이 없습니다


개인의 신앙적 열심히 인한 

무분별한 전도는

어쩌다 소 뒤걸음질에 개구리 잡히듯

한 두 번 전도되는 사람 이외에는 


보다 많은 잠재적인, 신자들을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 천당 불신지옥,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라고 

구원의 핵심을 전할 때


이 말은

인간은 원래 죄인이니

안 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지옥 간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구원받자 천국 가자

이런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도받는 사람이 

죄인임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의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가 지옥 갈 죄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한테 지옥 갈 죄인이라고 하면

버럭 화부터 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이 죄인이라 했을 때

이 말은


너는 지옥 간다..라는 무지막지한 뜻보다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즉, 인간은 뭘 해도 행복해 질 수 없다는 뜻에

 더 가까운 말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설명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예수천당 불신 지옥’ 하면서 

마치 교회에 안 나오면 

예수님이 잡아다 지옥에라도 

던질 것처럼 전도를 하게 된다면


필경은 

복음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단순히 

’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라든지

’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철저하게 신뢰한다 ‘ 등으로


믿음은 단순히

성경 말씀에 대한 자신의 신뢰 내지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입으로 하는 동의, 결단 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시인하며 

예수를 의지라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실제 삶 가운데서는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전히 돈과 미모와 

자신의 실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것들이 실질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이는 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 열심히 하셨던 분들에게 볼 수 있는  오해인데..)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 ‘고 말을 할 때

여기서 ‘오직 믿음’이란  말의 뜻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오직 믿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믿음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이 마치 우리의 신앙적 열심이나 

공로, 행위를 말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오직 믿음‘이라 했을 때

이는 세상적이지 않고 

오직 교회에 대한 열심으로

기도로, 봉사로, 선교로, 

즉 온갖 신앙 행위로써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고, 

그렇게 해서 구원도 받는다는..


즉 우리의 신앙적 열심이 곧 믿음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 (고전 1.29)

이라고  말씀하는데


오히려 믿음이 자랑거리가 되고

믿음이 자기의 소유물처럼 되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져서

더 강한 믿음을 가져서 

구원을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가끔 상담을 할 때 보면


특히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시고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분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목사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강한 믿음을 가져서

환난과 역경 가운데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하는 고민입니다


즉 강한 믿음, 좋은 믿음이란 

다른 사람과 차별된,

남들과는 다른 

어떤 경지에 이른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어서 빨리 그 경지에 올라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신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믿음, 좋은 믿음이란 애당초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이런 오해를 했던 사람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대표적으로 믿음에 대해서 

이런 오해를 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성경 기록을 보면

어떤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 스스로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면

사소한 장애가 아니라 

눈에 띄는 심각한 장애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선교사로서, 목사로서 

자신의 심각한 장애를 

선교의 걸림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고쳐주세요

저를 강하게 해 주세요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던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난 너를 강하게 하지 않을 것이야’

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강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다만…

 대신에  내가 너의 강함이 되어줄 것이야.‘


라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바울은 두 번 다시

자신의 장애를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믿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약하디 약한 나에게 오셔서

나의 ‘강함’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하면서 살아간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며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인간의 절망적 상태에 대한 인정


즉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무능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좋은 믿음’이란  것이 

어떻게 하면 항상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를 의미한다면 

그런 좋은 믿음은 없습니다



항상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아서..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손길이 아쉽지 않은

강한 성자가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손길이 간절한

가난하고 연약한 죄인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리고 좋은 믿음이란

단지 예수가 죽었다 살아난 사실에 대한 

지적인 동의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

어떤 굳건한의 경지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신 믿음은


자신을 잘 섬기면

나중에 천국에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런 메시지가 아니라


죽음을 이긴

죽음의 권세를 능가하는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이 전한 

메시지,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지의 핵심은

너무 나도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자유를 누리며

이 땅 가운데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누리며 살아라 

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가 전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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