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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May 02. 2023

그 난해하다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

이번 주 설교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 유튜브 채널(유튜브 하나교회)의 구독자 분 한분께서 

댓글로 부탁을 해왔습니다


댓글의 내용은


목사님!

흐리고 선명하지 않아 갑갑한 신앙생활이었는데 

선명하고 밝게 해 주시는 설교내용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아직도 이해를 못 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비유입니다

언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로서 

주일에 의무적으로 설교하는 것 외에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으로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만큼

기쁘고 힘이 나는 부탁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던 설교 주제를

다음 주로 접어 두고 

누가복음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 불의한 청지기 비유> 


흔히 불의한 청지기 비유로 알려진 

누가복음 16장의 이 비유는

대표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입니다


해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비유의 적용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용 또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절마다 주제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고 

그래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집중이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선 이야기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찜찜해 보일 정도로 이상하게 들립니다. 

예수님은 평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리석다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개의치 말고 정직하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말씀을 해 오셨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반대로 

주인을 속인 불의한 청지기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합니다

우선 누가복음 16장 1절부터 보면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여기서 '부자'는 자신의 재산 관리자로 청지기를 고용한 사람입니다

이 부자는 청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나쁜 소문을 듣고 

이 청지기를 해고하기로 결정합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청지기는 사정이 아주 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하고 신세를 한탄합니다 

결국 청지기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습니다

자기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를 대비하여 

자신을 맞아줄 사람을 미리 만들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기름 백말을 빚졌습니다. 

청지기는 그 사람에게 

계약 문서에 오십 말로 바꿔 적게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밀 백 섬을 빚졌습니다. 

문서에 팔십 섬으로 바꿔 적게 합니다. 


주인을 또 속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비유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주인이 청지기의 이런 행동을 보고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 때문에 해고당한 청지기가 

또다시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는데 

주인은 그를 칭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 

(본문 8절에) 다음과 같이 결론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런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우리도 

세상에서 손해 보지 않고 살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잔머리를 굴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뜻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간혹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도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라고 하면서 


특히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드릴 때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이런 마음, 이런 기도에 관한 

말씀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일까요?



<청지기의 행동>


우선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계약 문서를 새로이 작성한 청지기의 행동에서 

어떤 (숨겨진) 윤리적 기준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윤리적인 교훈을 

제공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서를 위조한 것은 분명히 비윤리적인 행동이지만 

그것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신학자에 따라서는 

청지기의 문서 위조가 범죄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지주와 그의 땅을 빌려서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 

거래 이자가 통상 50~100%나 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고리대금이지요. 

청지기는 그 당시에 관행처럼 시행된 과도한 이자를 

제자리로 돌린 것뿐이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죄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비유를 통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청지기의 죄의 유무가 아니라


청지기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청지기가 그런 일을 저지른 이유는

해고를 당해 쫓겨나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은 이들이 

자신이 해고당했을 때

자기를 맞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지금 자신의 형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9절에

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설명인 9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비유 속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잃는 것은 

우리로 말하자면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우리는 모든 걸 잃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동안 노력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곧 내려놓아야 하듯이 

우리도 삶 자체를 곧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건강과 외모, 물질과 부는 

영원한 게 아니라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잠시 머물면서 

수단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 

어느 순간 목적으로 둔갑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우상숭배 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 비유에서 가리키고 있듯이)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우리를 영접할 친구,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마치  해고 통지를 받은 청지기처럼 

온전히 거기에 투자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배를 잘 드리고, 성경을 잘 읽고, 

교회 잘 나가면 될까요?

그런 경건한 신앙생활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삶의 결과이며 태도에 불과합니다. 

근원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거나 맞아주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런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하고

이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청지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모든 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그런 자세로 예배도 드리고 

그런 자세로 사람과의 관계도 맺습니다.


종말론적 세계관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정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나그네처럼 

준비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걸 잃게 될 순간을 

실질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유가 비교적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소확행'이라고 하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고

아무리 괴로워도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즐거운 일들을 모색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그 순간을 우리가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 모두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오늘 본문의 청지기와 같습니다. 

그 청지기는 지혜롭게도 

자기가 모든 걸 잃을 때 맞아줄 친구를 위해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또한  인생의 자리에서 해고될 때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줄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 가운데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이외에 

인생의 의미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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