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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03. 2024

신앙과 이성 사이...

사랑과 우정 사이만큼 미묘하죠?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인류가 끊임없이 고민해 온 문제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일반 학문에서도 운명론과 결정론의 이름으로

많이 논의되어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신앙과 이성은 서로  대립적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과 이성은

서로를 다듬어 주는 역할을 함으로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타협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생각해서

남의 생각, 남의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중세 시대야 워낙 비이성적 시대여서

자신과 생각과 믿음이 다르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불에 태워 죽였던 시대였느니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점차로 사람들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쳐

지금은 신앙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입니다




신앙을 믿음에 관한 것이라 하고

이성을 앎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믿는 대상과 앎의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신앙과 이성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사뭇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신앙심 깊은 행위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종교에 대한 폭력이나 테러마저도

용기 있는 신앙심의 표현으로 미화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유독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아마도 구약 속 하나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잘못 오해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일일 것입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가 같은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들 종교와 다른 이유는


신약 성경 속 예수님의 가르침이

비록 나와 생각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교회가

자신과 믿음이 다르다고 해서 타 종교를

신앙의 이름으로 폄하하고 멸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중세 시대 그 끔찍했던 십자군의 범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재산을  팔아 그것을 사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는

신앙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값어치에 대한

앎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과 이성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신앙은 앎에 기반을 둡니다

그 앎은 신앙을 통해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즉 믿음은 앎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에 대한 믿음은

그들에 대한 앎의 지경을 넓혀줍니다


좋아하게 되면

보다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신앙은

우리의 이성을, 우리의 앎을

더욱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시켜 줍니다


신앙은

내가 아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열린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믿음은

'창조적인 앎'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이란 고작

보고 듣고 읽고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편협하게 듣고 보고 아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자기 생각에 맞추어 판단하고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진정한 앎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이미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선과 악의 프레임, 틀에 통과시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원죄를 굳이 설명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 원죄일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객관적으로 읽으려 해도

결국에는 '내가복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이란, 믿음이란

이 땅에선 결코 선명하게 알 수 없는 진리를 향해..


그 어렴풋한 진리를 향해

더듬어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희미한 진리를 향해 부단히 다가서려는 노력이

바로 신앙생활이 아닐까 합니다


이성을 통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게 알았던 것이

신앙을 통해서 완전한 앎으로

점차 바뀔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를 위해 우리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는 최고의  몸부림은

삼위일체 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삶 가운데 직접 경험한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을 하나님이라 가르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유대인으로서 경전을 통해 배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지식적인 앎 사이에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든 조화시켜 보려는

인간 이성의 몸부림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로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단지 말끔하게 차려입고

교회 가서 예배하는 행위로 국한시키면 안 됩니다


신앙은 자신의 편협한 생각과

이성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를 현실 가운데, 삶 가운데

진리와 조화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내 생각에는 불편할지언정

그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배운 모든 지식을 쓰레기로 여기고

내가 싫은 곳, 내가 불편해하는 곳에 마주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말씀입니다


바꿔 말씀드리자면

나의 의지와 이성을 사용해서

비록 불편할지라도

나와 남을 하나로 여기고

남을 나처럼 대하려는 태도가


바로 신앙이고


성경은 바로  그러한 신앙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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