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지 말아보암
솔로몬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성전과 궁전을 지을 때 이들을 감독했던 노역 장관이 여로보암이다.
그는 평민 출신으로 국가사업의 총책임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반역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인물이다.
여로보암의 반역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단지 2개 지파(유다, 베냐민 지파)로 이루어진 남유다의 왕으로 남게 된다.(르호보암, 여로보암... 이름이 비슷하게.. 보암 보암 하니까 헷갈리겠지만..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고, 여로보암은 노역 담당 장관이다. 헷갈리지 말아보암 ㅋㅋ)
한 혈통, 한 신앙으로 똘똘 뭉쳤던 이스라엘이 그토록 쉽게 분열될 수 있었던 원인들 중에는 아마도 솔로몬의 아내들이 들여온 수많은 이방 종교로 인해 유일신 신앙이 퇴색했던 것과 솔로몬 시절 잦은 노역 공사로 인해 백성들의 원망이 쌓인 영향이 컸으리라..
솔로몬 살아생전에도 여로보암에게 이미 반역의 기미가 보였던 모양이다. 열왕기서 상권 11장 40절에는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이집트)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애굽 왕 시삭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집트의 22 왕조를 일으킨 ‘솨산크 1세(Shashank I), 또는 ‘쉐숑크 1세’(Sheshonk I)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이집트 여행 중 빠질 수 없는 명소 중의 하나인 룩소의 카르낙 신전의 벽에는 애굽 왕 시삭의 업적을 새겨 놓은 부조 그림이 있다.
혹자는 팀 로빈스/모건 프리먼 주연의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이 애굽 왕 시삭(쇼생크)을 모티브 삼았다고도 말한다.(쇼생크 탈출의 원제목은 The Shashank Redemption이다. The Escape from Shashank 가 아니라..)
암튼, 솔로몬이 죽고 나자 이집트에 피신해 있던 여로보암도 귀국한다. 노역 장관 시절부터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았던 여로보암은 여론을 등에 업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에게 ‘Deal’을 시도한다. 왕의 아버지 솔로몬이 갖은 노역 공사로 인해 백성들을 힘들게 하였으나 이제 새로운 왕인 당신이 노역을 가볍게 해 주면 계속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르호보암은 여기저기 자문을 구해본다.
솔로몬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지혜로운 노인들은 한결같이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말을 따르라고 충고하지만..
어리석게도 르호보암 왕은 자기와 함께 자라난 또래 친구들과 의논한 후 여로보암의 딜을 걷어차 버린다. 이때 르호보암이 한 말이 상당히 유명하다.
“내 새끼손가락이 울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 울 아버지가 채찍으로 다스렸다면..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 하리라”
이 말을 듣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가 막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윗 가문에 등을 돌려버린다. 그리고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노역 장관이었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다.(이때 백성들도 질세라 유명한 말을 남긴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덕분에 다윗 가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자신이 속한 유다 지파와 달랑 베냐민 지파 외에 남은 백성이 없게 되었다.
이후 르호보암은 북쪽의 여로보암과 평생 동안 전쟁을 하며 앙숙처럼 지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여로보암이 졸지에 왕이 된 이 일은, 이 전 솔로몬 왕 시절에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이미 예언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을 은밀히 불러.. 솔로몬의 타락으로 인해 그의 백성중 10개 지파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여로보암에게 미리 알려 주었던 것이다. 이후 모든 일은 정확하게 아히야의 예언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언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여전히 불안했다.
열왕기서에서 심심하면 툭하고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여로보암의 죄’라는 말이다. 열왕기서에는 누가 무슨 죄를 짓기만 하면 곧바로 ‘여로보암의 죄’때문이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여로보암 정말 열 받겠다.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다구...
사실 여로보암은 억울할 만하다. 열왕기서를 한 번만이라도 정독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여로보암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이스라엘의 허다한 못되고 잔인한 왕들에 비하면 여로보암은 상당히 ‘젠틀’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원해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백성들이 추대해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여로보암의 죄’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아닌...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행할 수 있었던.. 그런 일이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에도 그리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워낙 성격이 계획적이고 꼼꼼하여 항상 앞 날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해야 직성이 풀렸던 여로보암은 다가 올 미래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앙면에서 매우 특별한 민족이다. 국가의 성립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출애굽)에 기반을 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법궤가 모셔져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삶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제사를 드려야만 삶의 의미를 찾는 그러한 민족이었다.
그러한 민족의 왕으로 새롭게 추대된 여로보암의 걱정거리는 바로 그 성전이 자신의 영토가 아닌.. 남유다의 영토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다윗 가문에 대한 감정적인 원망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를 왕으로 섬기고 있다 할지라도
감정이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 진 후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여 백성들이 “.. 괜히 승질부려서..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도 못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도 못 받고.. 아... 괜히 박차고 나왔나..” 이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도무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여로보암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예루살렘에서 최대한 근접한 거리에 있는 장소(벧엘)에 제사 지낼 제단을 마련한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북쪽에 끝에도 제단을 하나 더 마련해서 (찾아가는 서비스..) 백성들의 편의를 위한 행정 서비스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백성 여러분~ 이제부터는 번거롭게 제사 지내러 멀리 다닐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서 남쪽과 북쪽 두 군데 제사드릴 수 있는 제단을 마련해 놓았으니.. 아무 데나 가까운데 들리셔서 간편하게 제사도 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으셔요 ㅎㅎ 아참.. 훈련된 제사장들도 준비시켜 놓았으니 그저 편하게 오셔서 마음껏 애용해 주셔요~”
뭐 이런 정도의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여로보암의 죄’의 전모이다.
여로보암이 백성들을 착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잔인하게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적으로 불안한 마음에.. 그깟(?) 제사 제도 조금 바꾼 것뿐이었다. 그것도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별거 아닌(?) 일이.. 이후 자신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