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하루

by 강아

윗사람에게 보고드리고 오자 진이 빠져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발표하기 위해 몇날몇일을 고생하고 데이터보고 토할거 같았지만 어찌 마무리는 된것 같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 중 존경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그런 사람에게 보고하러 가는 일조차 실존주의 측면에서 보면 다 쓰잘데기 없는 일이다. 임원보고 안하겠다고 하니 보스가 '그래도 해야지'란다. 왜요? 따지고 싶었지만 결국 보고를 들어갔다.


작년이랑 달라진 수치, 올해의 현황, 향후계획을 말하고 오는 일은 정말이지 무의미한 일들이었다. 올해 법인 수가 몇개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것이 아닌 일을 내 일로 받아들이고 하는 일은 심각하게 어떠한 불일치를 가져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 근데 내가 하는 일은? 그 단차때문에 퇴근하고 온 무렵 퇴사를 생각하거나, 회사에서 복도를 지나갈 때 퇴사를 생각하지만 꾸역꾸역 다니고 있다.


저녁시간에 멍하니 있는게 지겨워서 영화를 한편 봤다. 홍상수 영화다. 예전에는 홍상수영화가 솔직해서 좋았는데 요샌 솔직해서 좀 버겁다. 적어도 쓸데없는 수치를 확인하고 말하는 내 일보다는 그들이 하는 치기어림, 낯선이에 대한 호기심, 성욕 같은 것들은 너무 본능적이어서 슬프다. 술을 먹으면 더 본능적이 돼서 이제 술은 먹지 않는다.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 사랑이라고 믿고싶어 한 것에 불과함을 확인하는 순간 난 또 멍해졌다. 젊은 여자의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에 대한 욕망같은것도 그는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삶의 중요한 가치라고 말해지는 믿음이나 희망같은건 모르겠다. 난 그저 걷고 밥을 먹고 똥을 싼다. 요샌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에 관심이 간다. 점심시간엔 누군가가 '너 남친있어?' 라기에 '없다'고 말했더니 'XX어때?' 라기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어 '괜찮죠'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딩크를 원하는 남자는 별로 없더라고요'라고 말할걸 후회했다. 정말이지 아이에게 삶의 무한한 굴레를 겪게할 자신이 없다. 내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는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얻어도 다시 허무해지고 마는게 인생이라면 내게 삶은 너무 고달프다.


그래도 혼자인게 얼마나 행복을 누리는건지 미처 깨닫지 못한 걸수도 있다. 어짜피 등산하다 발 하나 삐끗해도 이런 감정같은건 아무 가치도 없게 되는데 너무 생각이 많은건가. 가끔 뇌의 스위치를 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