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단상

by 강아



#1

출근하는데 예쁜 직원이 '이거 드실래요' 하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두바이초콜렛을 줬다. 초콜렛을 좋아하지 않지만 받았고 그녀는 엘레베이터에서 정적이 민망한지 '요새 운동하세요?'라고 물었다. '요가해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저는 발레요' 라고 했다. '잘 어울려요'라고 했더니 '정말요?'하고 웃는데 내가 남자라도 반할것 같았다. 그런 여자는 누구를 만날까 궁금하다. 그리고 사람의 성격이란건 신기하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단게, 나도 회사를 다니기 전엔 그랬는데 직장생활하며 성격이 참 많이 바뀌었다.


#2

업무보고 들어갔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했다. 그가 사업내용을 물었을때 모른다고 했다. 내가 사직의사를 밝힌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말마따나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봤던 내용이지만 기억이 안나고 열심히 했어도 평가를 최하위 받았다는 경험은 더이상 힘을 빼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보완해서다시 보고를 들어오라고 했지만 들어가기 싫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건 나를 끼워 맞춰야 하는 일이라 하기 싫다. 말을 하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려면 말을 해야하고,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 표현이 더 진정성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윗사람이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해야하는게 폭력적이라 느낀다.


그는 보고가 끝난후 쿠키를 주고 갔지만 그 이후로 헤드폰쓰고 음악을 들었고 집에 가고 싶었다. 연차를 낼까도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한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상사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수 있고 권위적인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럴'순' 있지만, 지난 십년간 겪어왔던 불합리한 것들이 누적되어 '견딜수 없다'고 느낀다.


#3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읽으며 보낸다. 이건 마치 입시생으로 돌아간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그냥 이렇게 살다 죽고 싶단 생각 했다.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마저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릴 테고, 읽는것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벌어서 뭘할까를 생각해봤을때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요샌 주객전도가 됐다. 음악을 하면서도 불안하다. 근데 가만히 있는것도 얼마나 무료한지 아니까 강박적으로 읽고 차트를 본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오지에 가서 요가만 하는 삶을 살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4

저녁으로 사료처럼 저녁을 먹고 요가를 갔다. 화장이 지워지고 입술색이 없는 나는 내가 봐도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피곤해보인단 말을 하는건 싫다. 외모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판을 하는것 자체를 안했으면 좋겠다. 그것마저 상대방의 (말을하는) 입장은 또 다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간헐적으로 듣게 될때마다 사람은 안마주치는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최근 벌었던것만큼을 잃고 눈이 벌개져서 기업분석을 읽고 있는 나는 이미 불균형에 온것 같다. 무엇을 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불균형이 될수밖에 없지만 요샌 뭐랄까 피폐하다. 누구를 만나도 결국엔 끝이 있고 그런뒤엔 더 큰 절망이 있단걸 아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게 낫다고도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다들 버티면서 사는건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까 본부장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이제부터라도 표현을 하고 말을 해야하는건가 싶어서 요가쌤한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스벅 커피를 드렸다. 그말을 하면서도 눈을 바라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내가 '아 이런것도 아버지를 닮아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아버지는 몇년전 본인이 만든 제습기를 내게 주었다. 바라지 않았으나 그의 작품을 내게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거절하지 않았고 이후에 에어컨을 설치했기 때문에 당근에 팔았다. 어제 생전 안오던 문자가 와서 그거 사양좀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나는 얼마전 내가 그에게 이력서를 요청했을때 그가 보내주지 않은걸 기억하고 답장을 씹었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안할걸 가족한텐 그렇게 가혹하게 되는지 연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해도 이해해줄 거란 생각? 회사에선 나를 몰아부치다가 집에가서 해야지 하고선 집에 오면 소파에 널부러져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결국 회사에 가서야만 하는걸 보면 억지로라도 공적인 장소에 나가야 하는가 싶다가도 요샌 정말이지 노동으로 돈을 벌기가 싫다. 회사 사람들 다 좋지만 어릴적부터 뭐 하나에 꽂히면 그거에 파묻혀서 다른사람에게 방해받기 싫어하던 유년이 떠올랐고 그런 기질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아까 엘레베이터에서의 타인과의 만남은 신기함을 주지만 뭔가를 빚어내는 장인처럼 뭐 하나만 진득하게 하는 삶에 대해 요새 자주 생각한다.


#6

올해 다시 유학을 준비해야 할지, 포트포리오를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누굴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삶을 상상하다가도 그런 삶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지 모르겠고 그런 삶에 편입돼도 결국 자유를 갈망하게 될걸 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결혼한 남자가 '왜 내가 이 사람을 부양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결국 내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었고 그런 생각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살아간단 걸 알 수 있었다. 느끼지만 말로 하지 않는 것들을 쓰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요샌 먹고사는 문제로 뒷전이 되어버렸고 그렇기에 뭔가가 전도된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가서 학위를 따고 오면 만족할 수 있을까? 유학을 하면 또 한국에서 포기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하진 않을까? 결국 삶은 선택의 문제이고 어떤 길로 가든 플랜비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그게 FOMO와 비슷할 거란 생각을 했다.


#7

하기싫은 업무를 억지로 하면서 월급을 받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은 너무 험난하기만 해서 때때로 절망을 준다. 내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0이 되더라도 다시 돌탑을 쌓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그런 걸 누구에게 말하고 싶다가도 그런 감정은 또 너무 쉽게 휘발되고 내일이 되면 없어질 것이란걸 아니까 누굴 만나고자 하는 욕망을 등한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젠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두렵기만 하다. 정작 내밀한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채 내 짐이 타인에게 짐이 될까봐 혼자만 앓고 있는게 점점 지쳐간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결국엔 가버렸기 때문에 불신이 생긴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타인이 생겨도 내가 마음이 변할수도 있는거니까.


#8

커뮤니티에선 아직 사랑하고 있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걸 막지 못하고 그의 옷가지라도 몰래 한개 훔쳐놓는 여자 이야기가 나왔고 사람들은 그녀가 안쓰럽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해도 애써 그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이나, 마음이 변한걸 알고 그녀를 떠나는 남자의 마음이나, 나는 또한 마음이 변한적이 없었던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9

영화 Closer에서 래리가 앨리스에게 '가까워지고 싶다고'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된다. 영화 Shame에서 낯선사람들과 관계를 하지만 정작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는 관계가 안되던 마이클 패스밴더도 자꾸 오버랩된다. 그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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