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복직한 지 일주일 만에 입원이 결정됐다.
새로 발령받은 곳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 정도, 차량으로 50분 정도 되는 곳에 위치했다. 소요시간은 둘 다 비슷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된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출퇴근 각각 약 1시간씩 운전을 하기로 선택했다.
발령 첫날 오전에 약을 먹고 출근했는데 쏟아지는 잠 때문에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더 큰 일은 출근길에 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이다. 내가 먹는 약들은 대부분 근육을 이완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을 줄이다가 결국엔 끊게 됐다.
약을 끊으니 거짓말처럼 바로 통증이 시작됐다. 거기다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것도 통증에 한 몫했다. 업무에 적응하느라 야근까지 하고 집에 오면 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운전을 하던 중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져 무서웠다. 결국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우산꽂이에 꽂힌 지팡이를 다시 꺼내야 됐다.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신경외과 교수님께서는 그 간 진료기록과 기어 다니듯 걷는 내 모습을 보며 당장 입원을 권유하셨다. 하지만 회사 때문에 당일 입원은 무리였다.
대학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하니 누구 하나 입원을 반대할 수는 없었지만 질병 휴직 후 복직하자마자 또 입원을 해야 된다는 것에 팀장님과 직원들은 염려했다. 그들의 걱정과 불만은 당연했다. 정기 인사시즌이 끝났기 때문에 인력보충은 불가능하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죄스러움.
결국 업무일정을 맞춰본 후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 2월 13일에 입원하기로 했다.
어제는 시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남편은 돌아가신 부모님께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살아가신 부모님께 잘해드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연휴는 장인, 장모님과 보내고 싶다는 착한 남편.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이것저것 샀다. 그리고 내가 약에 취해 자는 동안 남편은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했다.
마침내 음력 1월 1일 설날이 됐다.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친정 부모님과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나는 약을 먹었고 다시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엄마와 남편이 설거지를 다 해놓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잠을 또 잤다.
오전 11시쯤? 이제 상황이 반대가 됐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었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잠시 또렷해진 틈을 타 입원할 때 필요한 목록을 정리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거나 입원한 게 여러 번이라 기존에 정리해 놓은 목록을 확인하며 빠진 것만 추가했다.
입원하면 검사하고 잔다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텐데. 소설책을 넣을까 말까, 몇 권 넣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얇은 책 한 권만 넣기로 한다. 스마트폰 충전기, 마스크, 컵, 칫솔과 치약도 챙겼다.
입원 가방을 다 쌌다. 놀러 가는 게 아니니 여행 트렁크에 짐을 챙겨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달 전, 혼자만의 여행가방을 싸며 기뻐했던 게 떠오른다.
내 꿈은 현모양처이자 전업주부라고 외칠 만큼 일하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그래서 항상 그만두고 싶었고 퇴사자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 둥이의 지능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돈을 벌어야겠다.'였다. 둥이에게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복직을 했는데 아직 무리였나 보다.
약을 먹으면 이동과 업무가 어렵고, 약을 끊으면 통증이 심해지고. 이 딜레마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의 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입원을 한다고 깔끔하게 낳는 병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병원에서만 처방 가능한 진통제가 있다고 하니 입원할 뿐이다. 일 년 뒤의 내가 여전히 회사에 소속 돼 있을지, 아니 반년 뒤나 당장 한 달 뒤에도 내가 워킹맘으로 살 수 있을지 두렵다.
설날에 입원 가방을 싸게 될 줄이야.
연휴가 이틀이나 남았지만 왠지 뭘 해도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연휴는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