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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움직일 힘이 없다

by 이서진
성상 앞에 서서 그녀는 온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에게 신을 움직일 힘이
없다는 것을, 신은 그녀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대로 일하시리라는 것을 느꼈다.
- 톨스토이, <인생독본> -


문득, 내 성의가 부족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둥이에 대해, 둥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신께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조차 하지 않고 잘 자라길 바랐다니......

갑자기 한심하게 내가 느껴져 평일 미사에 참석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신자들이 예배 보러 온 신자들이 많았다. 넓은 본당 좌석이 다 찰 정도였다.


이렇게들 가족의 안녕을 빌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나태했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정원에 있는 성모상 앞에 섰다.

예배를 볼 때는 기도문 외에 다른 소망을 빌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성모상 앞에서는 아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봐야 되는 성모님의 마음에 감히 견줄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자식의 아픔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주실 것 같았다.

성모님, 우리 둥이를 보살펴주소서.

성모님, 우리 둥이를 보살펴주소서.

성모님 상 아래 초를 밝히는 곳이 있어

처음으로 초도 밝혔다. 둥이를 위해.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구나.
그게 인간의 의지란 거다.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힘.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고,
때론 그 열린 문하나가

신에게 변수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찾아보려고, 간절하게.

어떤 문을 열어야 신에게 변수가 될 수 있는지.

- 드라마 <도깨비> 中 -



나는 성모상 앞에서 오래도록 빌었다.

'신에게 변수가 될 간절함과 그 간절함을 지속할 의지를 갖게 하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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