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걸까.
학교에 입학한 후,
첫 페인팅 수업..
서로 그린 그림들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다들 그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림에 대해 느껴지는 생각을 이야기하라는데
내 얘기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부터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웠다.
"색깔이 예뻐요."
한 가지 대답으로 돌려 막기 하며 학기 초 수업들에서 진땀을 뺐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내 그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은 후
내 그림에 대해 직접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저는 그냥 그렸는데요..?"
"별생각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지만 교수님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림을 그린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감정에 대해 밝히고 싶지 않은데 꼭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 그림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고
나중엔 아무도 내 그림에 관심 갖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대부분 순수 미술 작가를 꿈꾸며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며 이야기해 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자신이 없었다.
'내 그림은 나의 우울과 슬픔과 비참함과 서글픔..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것들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이야기해야 하는 거지..'
'자기 연민에 빠진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내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판단하고 우습게 볼까 두려웠다.
진짜 속마음은 감춘 채, 교수님께 말했다.
"저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당장은
제 그림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교수님이 물으셨다.
"그럼 너는 그림을 왜 그리니?"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땐 예상하지 않았던 질문이라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때부터 점차 나는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내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 적어보았다.
(1) 나는 누굴 위한 그림을 그리는가
-> 나를 위한 그림. 붓이 캔버스에 닿는 느낌, 좋아하는 색깔을 만들어 칠하는 과정, 나만 알 수 있는 모양들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때로는 내게 편안함을, 때로는 자유함을 주는 과정.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2) 무엇을 위해 그리는가
-> 내 이야기를 하는 창구가 필요했다.
마치 그림은 내게 있어 일기와도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지만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일기장.
캔버스가 나에겐 일기장과도 같았다.
(3) 왜 그림을 그리는가
-> 계속해서 나를 위로하고 표현할 수단이 필요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림.
당시에는 이처럼 그림에 대한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그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그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은 계속되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슬픔에 대해 그려놓고도 누군가 그림이 밝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살 초반,
어리숙하고 이제 막 스스로 만들어놓았던 동굴에서
발을 내디뎠던 나는 세상이 두렵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