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새로운 세계에서 인생 제2막을.
뉴욕에 갔더니
우울증에 허덕이던 나는 한국에 있고
뉴욕에 있는 나는 새로운 인간이다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원에서 연결해 준 어학원에 도착한 첫날,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몸 주위를 에워쌌다.
교실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순 없었으나 (이때 내가 연습해 간 영어라곤 화장실이 어디에요? 한 문장)
눈은 파랗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나 보던
머리색을 실제로 가진 그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뉴욕땅까지 왜 왔을까?'
'나처럼 우울증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온 사람들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눈에 띄었다.
레오파드 무늬 바지, 레인부츠, 페도라..
화려하고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옷들을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왠지 나 여기선 좀 이상해도 괜찮을 것 같아.'
어학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준비하기 위해 뉴욕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뉴욕이 예술과 패션의 중심지라는 건 영화에서 봤던 것도 같은데
유명한 학교들이 꽤나 많고 그 학교들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은
또 그렇게나 많은지 처음 알았다.
뉴욕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음이 조여왔다.
한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두려웠다.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다시 우울한 방 안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뉴욕에 계속 있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해결책은 학교 입학..
부모님은 학비 걱정을 하셨지만
대학도 미래도 없던 하나뿐인 딸이
다시 꿈을 꾸고 미래를 갖겠다는데 반대하실 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슨 과로? 전공은 뭘로 해야 하지?
공부를 놓은 지 오래되었던 터라
대학에 가려면 뭘 공부해야 할지 전공부터 정해야 했다.
다행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패션, 디자인, 건축 등 예술 분야 전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답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난 어릴 적부터 미술이 하고 싶어 엄마를 졸랐지만 차마 천재성이 있다고
거짓말하실 수 없었던 미술 학원 선생님의 말에 처음 수채 물감을 잡기 하루 전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였기도 했겠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는 게 숨이 막혔다.
내 안의 갑갑함을 표현할 무언가 필요했었다.
뉴욕의 미대에서 요구하는 포트폴리오의 기준은
기본기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가능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가능성? 가능성을 어떻게 보여주지?'
'가능성이 있긴 한가?'
일단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알아야 했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물감 사용법부터
기본기를 배워갔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찾고 그 사람의
그림들을 조금씩 다르게 그려봤다.
준비하며 그림을 완성시켰다는 성취감보다 더욱 의미 있었던 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는데,
물감을 쓰고 종이에 붓으로 색을 칠하는 과정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종이를 지나가는 연필의 소리부터
물에 붓을 헹구는 소리까지.
나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릴 땐
주로 반복되는 패턴들을 그렸다. 잘 그릴줄 아는 그림이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왠지 같은 모양을 반복해서 그리는 것, 같은 모양이지만
여러 다른 색감들로 모양을 채워나가는 것
그 과정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고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하나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연결시켰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 동안은 '슬픔'이라는 감정만 생각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감정 I'이라 이름 붙인 그림은 캔버스 위로 그려진 칸들을
좋았지만 희미해진 사랑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떠오른 색감들로 채운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옅어진 추억들을 떠올리며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했다.
그리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땐 속이 후련했고 더 이상 지나간 기억들이
슬프게도 우울하게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을 그려가며 내 안의 묵혀있던
생각들을 하나둘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